故 박숙이 할머니 1주기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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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숙이 할머니 1주기 추모사
  • 남해타임즈
  • 승인 2017.12.13 14:42
  • 호수 5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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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남해여성회 회장

2016년 12월 6일 퇴근길에 병원 들러 할머니를 뵈었는데, 초점 없는 눈, 허허롭게 허공에 알 수 없는 손짓만 두어 번 하시더군요.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이전 상황과 확실히 달라서, 추운 겨울이라도 지나고 떠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강렬했죠.

"어머니가 딸이라고 부르던 정화가 왔심미더..." 하는 아드님의 목소리에 힘없이 고개를 돌려 저를 보는 듯 마는 듯 ... " 니랑 내랑 많이 닮았다고 하더라, 니는 인자부터 내 딸이다" 그렇게 인연 맺은 4년의 시간들은 밤 8시 30분, 걸려온 날카로운 전화벨소리에 아득히 멀어지고 2시간 전에 뵙고 온 할머니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서 자꾸 흔들려 황망하기만 했습니다.   
 
16살, 바래 가던 댕기머리 땋은 숙이는 물설고 낯선 상하이로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 히로꼬로 이름마저 빼앗긴 채, 7년의 성노예 삶을 강요받다가, 짓이겨진 삶을 안고, 천신만고 끝에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 남해를 10년 만에 찾아 오셨지요. 

분노는 한이 되어 숨죽여 살아 온 세월, 2012년 여성가족부 피해자 등록 후 남해여성회와 만나, `할머니 들려주세요` 강연도 하시고, ` 할머니, 세상과 만나다`로 나들이, 원예· 미술프로그램도 즐겁게 하시고, `할머니를 부탁해!` 기록 영상 제작에도 열심히 참여해주셨지요.

"남은 생은 다 풀어 놓고 가고 싶다, 내게 아무 일 없던 16살 그때로 돌려놓으라, 일본에게 절대 고개 숙이지 말고 당당하라" 고, 혼신을 다해 마지막 기운까지 태우시다가, 추모누리 나무아래 영면하신 박숙이 할머니! 겨울이면 방안에서도 목도리와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춥고 시린 이 겨울을 또 어찌 나시려는지...

할머니의 숨결과 기온으로 한반도 남녘 한 쪽에 작은 섬 남해에 있는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힘을 주시면서 이끌어 함께 해주세요. ​

퇴근 후 들르면 밥 먹고 가라 권하시고 손을 흔들며 방문을 열어서 배웅해 주시던 정겹고 살가운 모습이 불쑥 불쑥 기억 너머에서 찾아들죠. 

박숙이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남해여성회는 지난 8월 8일에 숙이나래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인권 평화 문화제를 열었고 8월 19일에는 대만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인 아마 박물관 관계자와 대만 청소년들이 남해를 방문하여 박숙이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남해와 대만의 청소년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교류하는 뜻깊은 행사도 진행했습니다. 아직도 할머니들의 원혼과 아픔이 고스란히 남은 역사를 마주하고 기억하고 바로 세우는 것은 남은 우리들의 숙제이며, 세계인이 함께 힘써야 하는 인류 보편의 정의와 평화의 움직임이라는 사명을 다시 새겼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6분의 할머니들이 더 돌아가셔서 이제 생존 피해자는 33명뿐, 전쟁 성범죄의 주범인 일본정부는 한일 외교 회담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며 국제사회에서 로비와 협박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역사 적폐의 가장 심각한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있는 상황이 참 답답합니다. 생존자 평균 나이 91.6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과 나날이 잦아드는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건강소식에 애가 탑니다.

지난 10월 26일 한국·중국 등 8개국 시민단체가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보류! 유네스코는 인권, 정의, 평화 대신 분담금으로 협박하는 일본 자본의 힘 앞에 어처구니없이 무너졌습니다. 2744건의 기록 유산물 중 박숙이 할머니 영상도 1건 포함돼 망연자실 허탈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한국과 중국 등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국 후손들이 세운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공식 기증받아 설치하며 역사적 진실과 인류보편의 양심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것이 없는데, 이럴 때 할머니가 곁에 계시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자꾸 되뇌이고 곱씹게 되는 요즘입니다. 절대로 일본에 고개 숙이지 마라...고 말씀 하시던 쟁쟁한 목소리가 느슨해지고 약해지는 우리를 담금질 합니다. 

- 살아생전 가장 바라셨던 남해 학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인류 최악의 전쟁 범죄이며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잔혹한 성범죄임을 알리는 위안부 교육을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도 만들어가겠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여러 가지 기록과 자료를 모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피해자가 가장 많았던 경남에 건립하도록 힘 모으겠습니다. 

- 전쟁으로 인한 여성인권 유린에 관심을 갖고 정의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반전 평화의 정신으로 분단된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 수 있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 유네스코 기록 유산물 등재를 세계 각국의 민간단체들과 함께 연대하여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걸어가도록 애쓰겠습니다.  

보고 싶은 박숙이 할머니! 
할머니의 숨결과 기온으로 한반도 남녘 한 쪽에 작은 섬 남해에 있는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힘을 주시면서 이끌어 함께 해주세요. 

짓밟힌 육신과 마음에 평안이 깃들고, 그 어떤 폭압도 차별도 없는 곳에서 부디 부디 안녕하십시오.

2017년 12월 6일 
남해여성회 모두의 마음 모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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