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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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와 삶
  • 남해타임즈
  • 승인 2017.12.28 11:39
  • 호수 5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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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본지 칼럼니스트

남해군이 제안한 교량 이름이 무난하게 낙점되리라는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결국 내년 3월까지 판정이 유보되었다. 도지명위원회 1차 심의 이후 일부 주민들은 경남도청사에 집결하여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생업 등의 사정으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한 군민들과 전국 각지에 널리 흩어져 있는 향우들도 한마음으로 `제2 남해대교`를 지지해 온 터라 한 해를 넘기는 아쉬움이 크다.

각설하고, 도지명위원회의 아마추어적인 행정 처리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 처음부터 상식과 원칙을 지켰더라면 쉽게 단일안을 도출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심의에서는 아예 남해 측 의견이 누락된 편파적인 권고안을 국가지명위원회에 상정하려고 했다. 뒤늦게 입장을 번복하고 재심의에 나선 사이, 양쪽 지자체 주민들의 심적 고통과 갈등이 증폭되었다. 결과를 막론하고 후유증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운 국면에 접어든 듯하다. `제2 남해대교`를 고수하는 남해군의 입장은 특별할 게 없다. 지금까지 교량 명칭에 섬 지명을 적용한 선례 혹은 관례에 있어 그 부당성이 사실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이번 역시 기존의 통상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이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다리와 삶을 동의어로 느낄 만큼 다리의 소중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직접 지은 이름을 마음껏 불러 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우려는 주장이 끝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열망이 클수록 집단 상실감에 빠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상황을 보다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름을 쟁취하고 못하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행여 원치 않는 결과에 직면하더라도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설득 작업에 최선을 다하면 결코 그 노력은 헛수고가 아니다. 공동선을 위해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합목적적인 행동을 펼쳐 나가는 과정에서, 각자 스스로 애향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일임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불자는 아니지만 당면한 난제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해 본다. 한 마디로 이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이름이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어떤 사물이나 단체를 다른 것과 구별하여 부르는 일정한 칭호`다. 아닌 게 아니라 삼라만상은 저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고, 그 이름으로써 개개의 사물을 분별한다. 그렇더라도 이름은 허망한 것이다. 이름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일체의 형상이 마찬가지다. 이름이나 형상에 잠시 애착할 수는 있겠지만 불변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相)을 낱낱이 파헤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음이 바로 불변의 이치(理)다.

이는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출가한 뒤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의 말씀이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 세계는 결국 먼지로 돌아간다. 눈으로 본 것을 절대적으로 신앙하는 뭇 중생에게는 직격탄이 되겠지만, 먼지든 먼지 이전의 형상이든 본질적으로 텅 빈(空) 것은 사실이다. 부처님도 열반에 드시기 전 과거 수십 년간 설하신 팔만 사천 법문을 모두 부인하셨다.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라는 말이 있다. 이쪽저쪽 편을 가르고, 내 다리 네 다리 다투는 것은 천지만물의 뿌리가 하나라는 관점에서 보면 크게 의미가 없다. 다리는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합과 소통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다. 다리는 사람들이 뭐라 부르건 묵묵히 제 자리에서 섬과 육지를 단단히 이어 주고, 고향을 지키는 부모와 타관에 나간 자식의 마음과 마음을 촘촘히 이어 준다. 말 못하는 다리가 누구 편을 들 수 있겠는가. 만일 이름 때문에 분열이 생긴다면 다리는 생기를 잃고 고작 철근덩어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제 마음을 돌이켜 다리의 본질을 이해하고 본연의 기능을 살리는 데 집중할 때다. 조바심은 남해 바다 푸른 파도에 흘려보내고 의연하게 삶을 이어가야 한다. 사랑하는 고장을 위해 무언가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이끌었던 응축된 에너지를 교량의 활성화와 군의 미래 발전에 돌려야 한다. 끝으로 우리 사회에 아직 정의가 살아 있고 상식이 통한다면 국가지명위원회가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내림으로써 섬 식구들의 애환을 다독여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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