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나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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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나누세요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1.11 11:16
  • 호수 5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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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본지칼럼니스트

사람들이 즐겨 나누는 인사말이 궁금하던 참에 `복 많이 받으세요.`가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다. 설날 덕담으로 압도적인 인기가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평상시에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 없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립 서비스 차원일지라도 발복되기를 기원하는 인사를 받고 화내는 사람은 여태 못 봤다. 이러한 대중적 현상의 배경을 살펴보면 남녀노소 복을 좋아하는 국민성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들은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의 다섯 가지 복을 선호한다. 유호덕이란 덕을 즐겨 행함을, 고종명은 타고난 수명을 편안히 마침을 뜻한다. 오복에 유호덕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결코 일신의 안락과 부귀영화만이 복된 삶의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산더미처럼 쌓인 다이아몬드도 개인의 안목이나 가치관에 따라서는 한낱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난이 큰 걸림돌이 못 되는 것이다. 

한때 공짜가 있느냐 없느냐 논란을 빚은 적도 있다. 어쨌거나 공짜 복의 유무는 차치하고 아무나 복을 누릴 수 없음은 상식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인시복전(人是福田)`이라는 경구를 통해, 사람이 곧 복전이므로 마음에서 모든 복이 나온다고 설하고 있다. 그러나 불성을 한가득 품은 위대한 복밭조차 공들여 가꾸지 않으면 하등 쓸모가 없다. 또한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이라 하여, 복은 허공에 넘쳐나지만 각자의 마음 그릇만큼만 받는다고 경고한다. 

`운칠복삼`이라는 말도 많이 하는데, 인생살이의 7할이 운이고 3할이 복이니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다소 자조 섞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맹신한 나머지 일생의 운명을 마치 도박판의 주사위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한다.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운이나 복으로만 치부한 채 요행수나 바라며 살아갈 요량이면 그 인생의 결말은 불문가지다. 박복만 한탄하며 하늘을 원망하기보다 묵묵히 역경을 헤쳐 나가는 노력과 성실성이야말로 복된 삶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분수에 어긋난 탐심을 경계하고, 복의 양면성을 깨달아 복이 화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면 불행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면 행복하다. 풍족한 생활 속에 하릴없이 무위도식으로 세월을 축내는 천국 삶과, 힘들고 괴로워도 하루하루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지옥 삶이 있다. 전자는 따분한 천국이고 후자는 신나는 지옥이다. 단지 삶을 풍자한 우스개일 뿐인데 따분한 천국을 선뜻 지지하기가 주저되는 연유는 무엇인가.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개인 취향의 문제다. 

혹시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다 하더라도 흥청망청 낭비하면 이내 거덜 나게 마련이다. 복을 오래 누리려면 복을 계속 지어야 한다. 주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는 체험해 보면 안다. 분명한 것은 복을 나누면 나누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받는 사람과 주변 사람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사실이다. 다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마태복음 6장 3-4절의 말씀처럼 `보여 주기식`은 금물이다. 

언젠가 TV를 보니 사찰의 해중(海衆 승려)에게서 `보살님, 복 많이 받으세요.` 축원을 들은 여신도들이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복을 준다고 해서 냅다 받을 일만은 아닐 터다. 수행자에게도 복은 `삼생의 원수`다. 복 짓는 한 생, 복 쓰는 한 생, 복 없이 쓸쓸이 보내는 한 생, 결국 삼생이 편편치 않다. 무릇 수행자의 사명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모래알과 같은 유루복(有漏福) 대신에 무루복을 일깨워 대중들의 수행 정진을 돕는 데 있다. 괜한 걱정이겠지만 기복적 신앙을 언급하는 순간 깨달음도 거기서 머물 수밖에 없다.

`화향백리 인향만리`, 사람이 꽃보다 향기로울 수 있는 것은 복을 혼자 차지하지 않고 함께 나누려는 마음에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한 해는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닌 `복 많이 나누세요.`라는 복스러운 덕담이 널리 쓰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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