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가족여행길, 오산 궐리사에서 공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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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가족여행길, 오산 궐리사에서 공자를 만나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2.08 11:47
  • 호수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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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남해향교 총무장의

스산한 겨울풍경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용인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1월 27일 아침 8시에 남해를 출발한 우리는 용인으로 가는 초입인 오산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가까운 곳에 있는 공자(孔子)를 모신 사당인 궐리사(闕里祠)를 찾았다. 

10년 넘게 향교를 들락거렸고, 유교문화해설사 교육을 받았지만 공자를 모신 사당을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오산 궐리사는 충남 노산시 노성 궐리사와 함께 양대 공자사당이다.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이 중종 때 후학을 지도하기 위해 서재를 세운 곳이라고 하니 역사의 편린들이 사당 곳곳에 남아 있음을 느꼈다. 

공서린은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화를 당한 분이라고 하니 남해로 유배 온 김구와 화전별곡이 더욱 애절하게 뇌를 스친다.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던 탓인지 나는 공자의 제자였던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과 죽음에 대한 물음이 문득 생각났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것인가. 삶도 알지 못하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

공자는 자로에게 현실에 관심을 가지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우리가 설날에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제삿날을 챙기는 것은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삶의 지표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결코 무슨 음덕을 바라고 하는 행위가 아님은 이미 공자께서 설파한 사실이다. 

공서린은 후학을 지도하면서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 놓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제자가 있으면 두드려 깨우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은행나무는 그가 죽자 운명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250여 년이 지난 후, 정조가 화산(花山)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많은 새들이 슬피 울며 죽은 은행나무 곁으로 모여들어 행차해 보니 은행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은행나무는 지금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분수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다. 

정조는 공자가 살던 중국 노나라 산동성 곡부의 궐리촌에서 이름을 따서 이곳의 지명을 궐리로 고쳐 부르게 하고 사당을 세워 성묘(聖廟)를 갖추고 궐리사로 이름 지었다. 성묘의 오른쪽에는 2층 행단(杏壇)이 있고, 오른쪽에는 공자의 고향인 곡부시에서 귀증 받은 석상을 세운 성상전이 있었다. 

2,500여 년 전 이 세상에 태어나 3천여 명의 제자를 길러낸 사상가, 한때는 상갓집 개처럼 살기도 했지만 위대한 동양철학을 완성한 공자를 중심으로 안자, 증자, 자사, 맹자라는 네 성현을 뒤로 하고 남해향교 장의들과 다시 궐리사를 찾을 날을 기약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용인 신세계 인재개발원 연수원에서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과 함께 밤을 지샌 우리는 다음날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세운 호암미술관으로 갔다. 우리나라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이중섭, 박수근 등의 진품 속에서 남해초등학교 출신 이준 화백의 그림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2월 8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상수 기념 전시회를 연 후 다음날 고향인 남해군을 찾아올 100세의 노화백을 만나기로 했으니 그 기쁨이야 오죽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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