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때 대학생 제치고 국대 선발된 체육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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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때 대학생 제치고 국대 선발된 체육영재
  • 김태웅 기자
  • 승인 2018.03.08 12:27
  • 호수 5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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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대회서 기량 뽐내며 평창 금메달로 성장가도

윤성빈은 누구?

이동면 난음마을 출신인 윤성빈 선수(24)는 어릴 적부터 남다른 운동신경을 드러냈다.

유소년 축구 남해군 대표로 뽑히기도 했으며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육상 단거리·높이뛰기 남해군 대표로 도민체전에 출전해 1등을 하기도 했다.

윤성빈은 이동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됐고, 신림고 재학시절 김영태 체육교사를 만나 스켈레톤을 시작하게 됐다.

김영태 체육교사는 윤성빈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체대 입시반으로 데려와 집중적으로 훈련시켰고, 이후 한국체대 교수를 통해 국가대표 선발전의 기회를 잡게 된다.

윤성빈은 선발 장소에 도착해서야 국가대표 선발전인 것을 알정도로 복장조차 갖추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나가게 돼 테스트에서는 전체 참가 인원 중 10위 정도의 결과밖에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윤성빈의 뛰어난 순발력과 운동신경을 알아본 한국체대 강광배 교수는 윤성빈 선수를 국가대표 상비군에 포함시켰다.

스켈레톤 입문 3개월 만에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윤성빈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대학생 형들을 제치고 당당히 스켈레톤 국가대표 선발전에 합격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당시에도 대학생들보다 스타트 기록이 1초 이상 빠를 정도로 탁월한 운동 능력을 뽐냈다고 한다.

이후,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아메리카컵 1차 대회에서 23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였고, 7차 대회에서는 8위를 차지하는 등 입문 1년도 안된 고등학생 선수가 이 대회 톱10에 진입했다.

8~9차 대회에선 각각 5위, 4위에 오르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시즌 전체 IBSF 랭킹은 70위를 기록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윤성빈은 더욱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기량을 갈고 닦았다.

그 결과 2013~2014시즌 아메리카컵 3~4차 대회 3위, 5차 대회 2위에 오르며 메달권에 진입했고, 대륙간컵 4차 대회에선 1위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이후 계속 성장하더니 2016년 2월 5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2015-2016 7차 월드컵 대회에서는 생애 처음으로 우승하고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스켈레톤의 우사인 볼트` 라고 불리며 약 10년간 이 종목을 지배하며 정상의 자리에 있던 라트비아의 마르틴스 두쿠르스를 2위로 밀어내고 스켈레톤 입문 3년여만에 불과한 선수가 월드컵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마르틴스 두쿠르스는 2015-2016시즌 8차례 월드컵에서 이 대회만을 빼고 나머지 전 대회에서 우승했는데, 윤성빈 본인이 우상이라고 밝힌 두쿠르스의 한 시즌 모든 월드컵 대회 우승을 자신이 막아냈다.

그는 또한 스켈레톤 세계선수권에서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스켈레톤의 신성인 그였지만 한때는 위기도 있었다. 썰매를 타는 것이 너무 무섭고 힘들다고 포기하려 했던 것.

하지만 한국체대 강광배 교수와 윤 선수의 어머니 조영희(다초초, 이동중, 남해고) 씨의 격려와 설득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훈련에 매진한 결과, 오늘날 세계 최정상에 우뚝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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