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곱셈 가슴은 나눗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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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곱셈 가슴은 나눗셈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6.07 16:55
  • 호수 5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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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화
남해군상공협의회 사무국장
본지칼럼니스트

생명력이 있는 글에는 부사가 없다. 부사를 쓰면 매우 찬찬하고 세밀해서 뜻을 더 분명하게 전달하는 줄 알았다. 문장은 더 진지하고 실감나게 표현되는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쭙잖지만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다. 

불필요한 부사들을 매달고 살면 인간다운 맛이 없어 보인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좋은 양념으로 잘 차려진 밥상을 드리겠다는 것이 겸손과 배려가 아니라 상대방을 식상하게 하는 것 일수도 있겠다 싶다. 재료가 안 좋을수록 양념은 과해지기 마련이니 언어의 총량에 대하여 고민하는 것도 말의 곁가지 때문일 수도 있겠다.

요즘 들어 부쩍 생각보다 말이 앞선다는 것을 느낀다. 침묵과 만나는 시간이 부족하고 정적 속에서 나의 본성을 찾으려는 마음이 얕아서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면서도 이것 말고 특별한 이유가 더 없는지 더듬고 있다. 

글도 그렇다. 처음에는 생각이 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글이 생각을 만든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껏 앞섰던 말이나 남겨진 글들은 표현된 만큼이나 나를 살피지 못했다.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테두리를 넓혀 놓고 한계도 극대화 시켰다. 정작 실천하지 못하면서 그럴싸한 부사를 동원시켜 겉으로만 있어 보이게 한 위선도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능력과 책임이 실제 작용할 수 있는 범위와 달랐던 것에 대해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묘사 하는 사건과 목적물은 다른 것과 식별될 때 상대방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된다. 이러한 분별력을 가지는 것이 인간의 지성이다. 구별하여 분별하는 것, 그것은 사물을 다른 것과의 대립관계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을 규정하여 제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지성을 제한의 힘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말이 앞서는 것은 자기를 제한하는 힘이 약해서 그런 것이다.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다. 살다보면 모두가 준비되기를 바라는 것 또한 슬기롭지 못하고 둔한 생각이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과 여건이 갖춰진 후에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여겼다. 가슴을 크게 열어젖히지 못하고 머리로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무척이나 둔감했던 마음이다. 겉보기에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여러 생각과 행동이 또 다른 근심으로 돌아올 때는 마음으로 살피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슬기롭지 못한 둔한 선택이 나를 아프게 했던 것도 머리로만 곱하려 했지 가슴으로 나누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세상을 향한 쓸모를 결박한 몸과 마음은 시대적 소명 앞에 정체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조건 없이 용서한 적은 얼마나 많았던가?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상이었다고 위로 할 수 있지만 까닭이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세련된 맛도 없는 우둔한 생각이다. 미리 앞서갔던 그 말들과 글들이 모여 다시 나를 가르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긴 하다. 

그렇구나, 지나고 나서 되돌아 볼 때 이해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면 거추장스런 부사를 매달고 살기보다 단출하게 머리보다 가슴으로 살아야겠다. 민감하고 예민한 과정에서 부딪치는 고통과 아픔도 머리로 먼저 계산하지만 결국에는 가슴으로 견디고 이겨낸다. 머리로 느끼는 감정이 가슴으로 타고 내려와 온전히 내 것이 되었을 때 인간의 자숙과 성장을 함께 만든다. 

머리보다 가슴에 남는 언어는 변질되거나 변형됨이 없이 오래 견디어 주고 삶의 어정쩡한 가운데서도 중심을 잡아 준다. 솔직한 언어에 부사는 곁가지다. 머리는 곱셈을 하지만 가슴은 나눗셈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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