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작 이렇게 살 걸! 도시 살 때는 속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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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작 이렇게 살 걸! 도시 살 때는 속았던 것 같아요"
  • 강영자 기자
  • 승인 2018.08.20 10:52
  • 호수 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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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 상주중 엄경근 미술교사

엉뚱한 걸 원하고, 엉뚱한 걸 쫓아가며 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해 와서는 나와 가족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자신감이 붙습니다


지금 상주는 `여태전 효과`를 보고 있다. 대안학교 상주중이 생기면서 대안공교육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모아지고 실제 상주면에 귀촌하려는 인구 또한 날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달이 뜬 달동네`를 그리는 화가로도 유명한 엄경근 미술교사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 상주중 미술교사 직을 제안 받고 남해와의 인연이 시작된 엄경근 선생님. 아이들과 학부모들 사이에 `따뜻한 엄쌤`으로 불리는 그의 귀촌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대안학교 최고봉인 여태전 선생님께 배우고파
엄경근 미술교사는 지난해인 2017년 3월, 김해에서 남해로 왔다. 학교 밖 아이들의 꿈과 삶을 예술로 찾아주고 싶어 마련했던 `비인가 경남미술학교`를 위해 제도권 밖에서 5년 동안 고군분투하던 시간을 보내던 중에 대안학교의 최고봉인 상주중 여태전 선생님께 미술교사 직을 제안을 받았다. 본래 여태전 선생님의 팬이었기에 이참에 가까이서 대안교육 삶의 현장을 더 느끼고 더 배우고픈 마음이 커 김해의 삶을 채 정리할 새 없이 일단 남해로 왔다.

비인가 학교였기에 운영금이 절실해 열었던 김해의 미술학원, 학원에서 벌어서 미술학교에 쏟아 붓던 삶은 진행중이었기에 2017년도는 그야말로 혼란기, 과도기였다고 한다.

일주일에 2회 남해와 김해를 오가는 동안 어느 순간, 김해로 가는 시간을 괴로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엄경근 교사는 말한다. "손 내밀어주신 여태전 선생님의 손을 덜컥 잡긴 했는데 아직은 두 개의 삶이 혼재돼 있다 보니 힘든 시간이었죠. 그러다 서서히 제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죠. 조금 부족해도 모자라도 남해에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결심이 섰죠"

 

월급날 통닭 한 마리 사서 집에 가는 행복
미술학원을 운영할 땐 제법 큰돈도 만졌다. 하지만 시간은 반비례였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 먹은 일은 언제였는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들만 셋인 경근 씨는 말한다. "번 돈은 다시 학교에 투자하는 삶을 반복하고 학교 밖의 아이들을 구해보려 노력하던 시간인데 정작 제 가족들과는 멀어지는 삶이다 보니 자괴감도 컸죠. 그러나 남해로 귀촌하고 나니 행복지수는 120퍼센트에요. 월급날 통닭 한 마리 사서 집에 걸어가는데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진작 이렇게 살 걸 싶대요. 행복의 최고점 마다 여태전 선생님의 얼굴이 달처럼 딱 떠올라요"

그는 사실 만원의 가치를 잘 몰랐던 사람이었다고. 그랬던 그가 남해 와서 상추가 이렇게 맛있는 것인 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좋은 이웃 만나 꽃게며 채소며 실컷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는 이런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돌려주고 싶어 매주 수요일 저녁, 상주에 사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교실을 열고 있었다.

방황기에 만난 남해는 `넓은 품`
지난주에도 부산을 다녀오며 유명한 아파트촌을 들르면서 본인이 얼마나 행복한 아빠인지를 다시금 느꼈다는 경근 씨. "텔레비전에 나오는 대형아파트가 제 눈엔 닭장처럼 보이는 겁니다. 갑갑하고 삭막하고. 남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저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겠구나 싶더군요. 도시에 살 때를 돌아보면 뭔가에 속았던 것 같아요. 엉뚱한 걸 쫓아가고, 엉뚱한 걸 원하는 삶. 남해 와서는 내가 삶의 주체가 되니 더 자신감도 생기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손닿을 가까이에 있다는 게 너무나 든든하고 아이들 웃음소리를 곁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게 큰 행복입니다"

만일 마음먹었다면 과감히 귀촌에 용기 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는 경근 씨는 "사실 (시골에서 살아보자는) 부부간의 합의가 있고 적게 벌어도 할 일만 있다면 다른 준비는 살면서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10살인 큰 아이를 전학시키며 오느라 `아빠가 미안해`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지금은 `어부가 꿈`이라는 아이가 매일 `남해 와서 신나`를 연발하며 낚싯줄에 미끼를 손수 끼우며 바다와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감사하다"고 했다.

이곳 아이들은 밝고 행복하다는 점에 늘 방점을 찍고 살아가는 경근 씨. 그에게 남해란 `넓은 품`이다. 어른이라고, 아빠라고 방황하지 않는 건 아닐 터. 인생의 방황기, 누구에게나 꼭 한번은 찾아오는 외로운 시기에 넓게 품어준 바다가 바로 이곳 남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오늘도 세 아이의 아빠, 첫사랑의 남편, `미술실 주인공은 나야 나`를 부르며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붓을 잡는 그의 손에 오늘도 웃음이 주렁주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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