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민주주의의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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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민주주의의 빛과 그늘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8.20 14:19
  • 호수 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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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화
남해군상공협의회 사무국장
본지 칼럼니스트

갈등의 심화가 크고 찬반으로 겨루는 힘도 드센 사회다. 다양한 생각들이 함께 어울리면 다름과 차이의 교환을 통해 견문을 넓혀주고 사회 발전에도 이바지한다. 문제는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만,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이다. 맞다 틀리다로 재단하기 때문에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힌 욕망이 중립까지 가기 그 길이멀다.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는 상황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통합시킬까?

찬반이 뚜렷한 사안에 대해 `숙의형 여론조사`라고 하는 공론조사가 처방으로 제시되고 있다. 시민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사안을 심화 학습시킨 뒤 토론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기 때문에 좀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렇다고 잘 모르겠으니 시민에게 직접 물어보자는 것이 항상 옳으냐. 그도 아닐 것이다. 리더의 생각보다 숙의 과정에서 모인 의견이 덜 할 수도 있다. 전문적이거나 기술적인 선택을 공론화 대상으로 넘긴다는 것은 선택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더 염두에 둘 것이 있다. 숙의를 의사결정의 중심으로 하겠다는 민주주의 형식은 민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해 두고 이들에게 결정 권한을 위임했다. 그런데 다시 시민 참여단이라고 하는 일부의 유권자에게 되물으려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애매하거나 논란이 있는 사안마다 대중들의 선호도에 따라 의사가 결정되면 대의제의 기능이 위축되거나 침해받는다. 그런데도 시민들과 충분히 의논한 연후에 결정해야 할 내용이라면 대의기관인 국회나 의회에서 먼저 공론화의 필요성을 공론조사 해야 하지 않겠나. 다른 관점에서 행정과 정치는 누구를 위해 일 하는가. 시민의 삶과 밀접한 일에 대해서는 좀 더 광범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도 시대의 맥락이다. 다만 그 절차와 방식이 정당하고 과정이 객관적이어야 한다.

1988년 공론조사를 최초로 제안한 제임스 피시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오랜 기간 숙의민주주의 이행을 설계했다. 그가 제시하는 몇 가지 특징에서 도움을 받을 이유가 있다. 적법하고 합리적인 숙의민주주의 이행을 위해서는 첫째, 모든 참여자에게 정확하고 자유롭게 이용되도록 제공되어야 한다. 둘째, `실질적 균형`이다. 서로 다른 입장들은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에 기반을 두어 비교돼야 한다. 셋째, `다양성`이다. 가까운 현실 문제와 관련되고 대중에 의해 제기된 모든 중요한 입장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넷째, `양심성`이다. 참여자들은 모든 논쟁을 양심에 맞게 진지하고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 다섯째, `동등한 고려`이다. 자기 생각을 옹호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평가되어야 한다. 숙의민주주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공론화, 2022 대입개편 공론화, 부산시의 오페라하우스 건립 중단 공론화 등의 과정을 보면 공통된 불합리가 거듭 포개어진다. 겹치는 문제점을 전문가들은 이렇게 지적한다. 이미 결론 내려진 정책의 합리화 도구로 쓰는 경우, 공론 주제와 상관없는 시민을 기계적으로 참여단에 넣은 경우, 국가 신인도를 고려하지 않은 경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에 전문성이 모자란 대중적 참여가 과연 올바른 결론에 이를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최근 망운산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두고 숙의민주주의로 해결하자는 의견이 많다. 마음속에 둘 것이 있다. 숙의민주주의는 토론하는 민주주의이다. 토론과정을 거쳐 합의에 도달하는 핵심은 결과보다 숙고의 과정에 있다. 숙의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갈등관리 모델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얼마나 진실 되고 균형 있게 제공되는지 대중은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에 따라서 사회적 수용성도 제고 될 수 있다.

우리 역시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토론과 성찰을 통해서 기존 판단이나 관점을 변화시키려는 성숙한 의식은 준비되어 있는가. 공정하게 의논하는 공론(公論)이 실속 없는 빈 논의의 공론(空論)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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