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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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9.14 12:59
  • 호수 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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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병 주
상주 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
본지 칼럼니스트

이른바 예능이라 불리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인문학`이 유행이다. 얼마 전 모 종편채널에서 방송됐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대표적이다. 원래 방송쪽에서는 교육방송 채널인 EBS에서 인문학 관련 강좌가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예능과 결합된 인문학 컨텐츠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방송을 통한 인문학의 대중화는 인문학의 상품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전문가 또는 학자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인문학이 저자거리에서 회자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남해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얼마 전 남해도서관에서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강좌가 개최됐다. 쑥스럽게도 그곳에 초대돼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예상 밖으로 강좌에 참여하신 분들 대부분이 연배가 꾀 높으신 분들이었다. 솔직히 내가 연단에 서는 게 아니라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맞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해살이 고작 3년차의 이방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인문학이 `학문`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삶`자체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마을살이와 인문학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문학을 영어로 하면 `휴머니티(humanities)`다. 굳이 따지자면 휴머니티라는 단어 전에 `아트(arts)`라는 단어가 좀 더 일찍 사용됐다고 한다. 언어, 예술, 역사, 사상, 법 등 인간의 삶과 사고에 대해 탐구한다는 말이다. 현재의 삶, 현재의 정치, 현재의 문화에 대해 탐구하고 좀 더 인간적인 삶, 사회, 정치, 문화를 상상하는 일체의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아트라는 단어를 좁게 해석하면 `예술`이다.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는 모든 행위를 예술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우리 일상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헤르만헤세는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것, 그것이 모든 예술의 궁극적 내용이고 위안`이라고 했다.

결국 인문학 강좌에 오신 어르신들의 삶이 예술이고, 인문학인 것이다. 그 분들의 삶이 이야기되고, 그 분들의 철학이 공유되고 토론 되는 게 인문학이다. "협동조합이나 마을운동은 인문운동과 결합할 때 그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전북 장수에서 인문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남곡 선생의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있다. 시골의 마을살이도 도시 못지않게 이해득실을 따지고 경제적 이익이 우선시된다. 자본주의적 욕망이 극대화된 사회에서 `공동체`를 회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더딘 일인가.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인문운동이라고 이남곡 선생은 주장한다. "협동조합이나 마을공동체를 사업적으로만 접근하는 정책이나 제도는 불안해 보인다. 구체적 삶, 사회적 실천과 결부되는 인문운동이 결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방소멸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횡횡하는 요즘 더욱 절실한 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200억씩 쏟아 붓는 도시재생사업이 겉만 번지르르한 집값, 땅값 부추기기 사업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더욱 절실한 게 인문학적 성찰과 상상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쫓겨나고, 사라진 사람과 생명이 어디 한 둘인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그저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필요한 게 인문학일 것이다.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대학에서 이미 쫓겨나다시피 했지만 거리에서, 마을에서 실천적인 인문학으로 부활하고 있다.

남해 상주에서도 `우리마을 인문학 강좌`(약칭 우인강)을 시작한다. 동고동락 협동조합 식구들과 상주초등학교, 상주중학교 교사들이 모여 마을학교, 마을교육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모임이 계기가 됐다. 경남 통영과 서울 성미산 마을 그리고 마산 내서마을에서 활동한 분들의 경험과 철학을 듣는다. 문화인류학자로 유명한 조한혜정 교수님에게 `마을`이 왜 화두인지 깊이 있는 통찰을 나누려 한다. 네 번의 강좌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이번 우인강 전체 주제에 대한 답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다. 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여서 생각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작한다. 남해 상주에서 시작하는 `마을인문학`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남해에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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