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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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추석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9.20 11:46
  • 호수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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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한바퀴 돌아 다시 추석이다. 1970~80년대 추석은 복잡하다 못해 번잡할 정도였다. 부산과 서울 등 객지에서 남해로 내려오는 버스는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다. 빼곡한 사람들이 한덩어리 원 같았다. 읍 사거리 또한 인산인해였다. 어린 시절의 추석을 떠올려보면 꽉 찬 보름달 같았다. 자주 보지 못하는 일가친척들을 일제히 만날 수 있었던 날, 집안 곳곳 방문마다 열면 친지들이 둘러 앉아 있던, 어딜 가나 사람들이 넘쳐났던 그게 바로 추석 한가위였다. 그 어린 시절의 내게 있어 추석은 문방구에서 사서 쓰던 천 지갑이 꽉 차는 날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동전 몇 개 찾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추석만큼은 용돈인심이 후했다.

추석을 보낸 후 친척들이 떠나고 나면 그제야 마을도, 마음도 텅 비어버린 것 같은 후유증 같은 걸 겪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명절후유증과는 정 반대였다고나 할까. 돌이켜보면 후련함이 아닌 아련함이 남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 어린이가 자라나 이제 어른이 되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추석인데 어린 시절 내가 만난 추석과 어른이 된 지금의 추석은 얼마나 거리가 벌어진 것일까.

오늘의 추석은 간소해졌다. 원이 작아진 셈이다. 함지박만큼 풍성했던 차례상 위의 음식 가짓수와 양뿐만 아니라 그 옛날 그 많던 친지들도 줄었다. 이유야 여럿이겠으나 결론적으로 가족은 줄고 흩어졌다. 굳이 이제 와서 왜 그럴까 캐묻고 싶지는 않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달라져버린 풍경을 안아 주었으면 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노라고. 여태 짝을 못 찾은 조카에게도, 제 일자리에 앉지 못한 사촌에게도, 이별의 아픔을 겪고 홀로서기를 하는 동생에게도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고단한 길 오느라 고생 참 많았다고 전해보자. 추석만큼은 둥근 달처럼 그저 비춰주는 사람이 되어주면 어떨까.

고향 진산에 큰 바람개비를 단다고, 농민의 곳간이 깨질 판이라고, 이제 남해대교의 이름은 잃었노라고, 이렇게 가다간 노인의 섬으로 남는다고… 이런 속 시끄러운 이야기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로 마음곳간부터 채워보자. 달은 둥글다. 한때 우리 또한 둥글고 부드러웠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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