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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세상을 향하는 창(窓), 그림은 세상에 바치는 꽃(花)귀촌 | 화가 박세상이 남해에서 그려내는 제2의 삶 그리고 새로운 소통
강영자 기자 | 승인2018.10.11 16:28|(617호)
개인전 15회(서울, 대구) / 화랑미술제 참가 (예술의 전당) / 부산 국제아트페어 참가(부산) / 단체전 및 초대전 200회 출품 / 대구미협회원, 남해미협회원
사람은 함께, 같이 산다며사람 인(人)자를 좋아해 작품 에 표현했다는 화가의 설명.

 대구에서 남해로 귀촌해 온 화가 박세상, 그에게 있어 남해란 또 다른 세상을 향하는 새로운 창(窓)이다.

 그는 남해로 오기 전, 자기만의 세계에 똬리를 틀고 거의 15년 남짓 두문불출 하며 지냈다고 한다. 물론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그 역시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미대를 졸업하고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재단법인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서 미술파트 담당자로 발탁됐던 박세상 화가. 그가 순수 전업작가의 길 대신 직장인 어린이회관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작업실을 주고 사택으로 머물 아파트를 주는 등 당시 미대생에게는 꿈의 직장으로 불릴 정도로 거절하기 어려운 좋은 조건 때문이었다. 스물여덟의 청년 박세상은 서울이란 큰 무대에서 세계아동미술전람회와 전국유아미술실기대회 등 큰 프로젝트를 해나가면서 심사위원들로 위촉된 미술계의 거목들도 만나는 등 본인의 작업에도 분명 윤활유가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서 보낸 2년 남짓한 시간은 그야말로 업무와의 전쟁이었다. 멋들어진 작업실을 준들 그 작업실에 들어가 붓을 잡을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는 삶. 그렇게 하루하루 소진돼 가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대학 선후배가 다 모인다는 전시회 초청. 바람도 쐴 겸 대구행 기차를 타고 내려갔고 그곳에서 저 밑에 꼭꼭 숨겨져 있던 미술에 대한 욕구가 일순간 터져 나왔다. 그룹전은 훌륭했고 밤새 그림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로 예술꽃을 피웠다. 동시에 그간 참아왔던 예술에 대한 목마름도 봇처럼 쏟아졌다. 그대로 다시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겠다는 결심이 확고했던 그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신혼 초였던 그는 부인에게 다시 대구로 돌아오라고 하고 생활은 영위해야 했기에 예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수업 외의 시간은 그림에 매진했다. 그렇게 살면서 화랑들이 서로 모셔 가고 싶어 하는 인기작가가 되고 그림은 계속 잘 팔리고. 그런 호시절은 이어졌다. 그러나 점차 화랑의 요구는 많아지고 스스로도 팔릴 그림인지 아닌지 가려가며 그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화랑에 환멸 느끼고 화실에서 은둔하며 두문불출…
심지어 죽었다는 소문까지도

 돈 되는 그림에 목을 매는 화랑의 요구 속에서 날로 지쳐갔던 박세상 화가는 직장 그만둘 때처럼 단호하게 딱 끊어내고 홀로 외딴 작업실에 은둔하며 세상과는 단절한 채 그림에 매진했다. 화가의 아내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당시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꽃`과 `커피`를 접목해 대구에서 `화가와 꽃`이라는 플라워카페를 운영했다. 워낙 화랑 쪽에서는 알려진 유명인사인데다 전시회도 한 해도 빠짐없이 수차례 해왔던 박세상 화가였기에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박세상이 죽은 거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였다고. 그도 그럴 것이 전화번호도 바꾼 채 화실에 은둔생활하며 그림 작업을 하며 홀로 산악자전거만 타면서 자연 속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발적인 은둔생활이 15년간 지속 되던 어느 날, 느닷없이 뇌출혈이라는 병마(病馬)가 찾아 왔다. 거실에서 쓰러진 그를 아내가 발견해 신속하게 의료조치를 취할 수 있어 다행히도 그는 현재 제2의 삶, 기적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늘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너무나 고마웠던 박세상 화가. 그렇게 다시 생을 얻고 늘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남해로의 여행도 떠나본다. 또 하나 문득 아내를 위한 전시는 단 한 번도 없었구나를 깨닫고 15년만의 고독을 깨고 아내를 위한 전시회를 열기로 결심했다.
 
다시 얻은 삶은 따뜻한 남해에서 사랑하며, 소통하며
 남면에서 `화가와 꽃`이라는 펜션을 운영하는 것으로 생활의 방도는 구하고 바람흔적미술관 입체미술관의 입주작가로 선정돼 현재 그곳을 임시작업실로 사용하며 그림을 구상하는 박세상 화가. 그가 겪은 뇌출혈이라는 병은 온도에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라 의사가 따뜻한 곳에서 살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객관적인 장점도 컸겠지만 그가 남해로의 귀촌을 결심하게 된 것은 `마음 열림` 즉 `소통`에 대한 스스로의 변화에서였다. 앵강만에 반한 아내와 서면의 붉은 노을을 특히 좋아하는 박세상 화가, 이 두 사람은 마술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오랜 시간 닫혀있었던 마음의 빗장이 스스륵 풀리는 기분 좋은 변화를 이곳 보물섬 남해에서 느꼈다고 한다.

 박세상 화가는 "자청하여 은둔했던 15년 간의 시간은 고독의 절정이었으나 외롭지 않았다. 고독을 즐겼다고나 할까. 정말 내가 나를 최대한으로 다 비워내어 순수 그 자체를 만들어 내야만 새로운 작업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죽다 살아났잖아요? 한 번쯤은 살고 싶은 곳에서 사랑하며,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어 남해행을 용기 낼 수 있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품 넓게 보듬어주는 이태문 이장의 고마운 제안으로 숙호마을회관에서 전시를 여는 것으로 마을 사람들과 첫 소통의 물꼬를 튼 박세상 화가. 그는 남해 이사하기 직전 노환인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으나 새로운 시작의 물꼬가 되어줄 남해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용기백배로 헤쳐 나갔다. 그럴 수 있었던 동력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고 함께 인내해 준 평생의 벗인 아내가 있고 이곳 보물섬에서 새롭게 펼쳐나갈 작품세계가 있기 때문이리라.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환경오염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삶과 작업에는 리사이클링(recycling, 제품을 다시 자원으로 만들어,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이용)이 스며져 있다. 진짜 보물로 가득 찬 보물섬인 남해에서 최소한의 것을 활용해 순환하고 소통이 필요한 사람들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소통하며 `힐링` 하며 머물고자 스스로 노력하는 박세상 화가, 그는 오늘도 함께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강영자 기자  nh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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