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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아 너는 알고 있느냐?북·중국경에서 통일을 꿈꾸다 ⑤ 2018.8.10.금요일
남해타임즈 | 승인2018.10.11 16:39|(617호)
장 현 재
해양초 교사
본지 칼럼니스트

통화시에서 집안시까지는 들과 산을 넘는 구불구불한 여느 시골길이다. 길옆을 흐르는 시내에는 풀 뜯는 소와 빨래하는 아낙네, 멱감는 아이들의 모습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 유년이 되살아난다. 차량은 속도를 내지 못한다. 골짜기를 달리는 차창 너머 원시림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두어 시간 달리자 멀리 압록강을 사이에 둔 집안시와 북한 만포시의 제련소 굴뚝이 눈에 들어온다.

따끔따끔한 팔월의 직사광선 아래 광개토대왕비와 왕릉을 보기 위해 내린다. 유적지는 관람로 외엔 잡초가 우묵장성이다. 고구려의 세력을 요동까지 떨쳤던 광개토대왕비 앞에 선다. 이 비는 서기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비석으로 총 1802자의 금석문은 고구려의 건국 내력과 광개토대왕의 정복사업을 연대순으로 새겨 놓았으며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명확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역사를 자국의 한 변방 민족의 일부분으로 오도하고 있다. 광개토대왕비를 뒤로 왕릉으로 간다. 관람로 주변의 해바라기꽃밭이 생뚱맞다. 늘어진 버드나무 그늘에 분노를 삭이며 왕릉을 둘러본다. 왕릉은 돌무지무덤 형태로 능 주변을 받치고 있는 호석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곳곳에 도굴당한 흔적과 허물어져 방치된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일국의 전성기를 이룬 왕의 무덤이 있는 곳도 우리 민족의 근거지였다. 저기 압록강 건너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북한 땅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역사의 일부분으로 흐르고 있다. 힘없는 나라의 비애다.

장군총을 뒤로 장수왕릉 1호 동반 무덤을 거쳐 집안시내로 들어간다. 시내 곳곳의 건물은 국내성 성곽 돌들을 빼내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야만족 같은 형태다. 시내를 통과해 압록강 변에서 정차해 잠시 만포시를 조망한다. 유리알처럼 맑은 물에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내려앉는데 강 건너 만포시를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다. 아쉬움을 달래며 강물에 손을 담가 본다. 물의 흐름은 분단도 막지 못할 터 하나 됨의 바람을 통구하와 합쳐지는 압록강 물에 흘려보낸다.

태양은 하늘 한가운데서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집안시에서 단둥시까지 다섯 시간의 긴 이동이 시작된다. 도로 사정은 더 나빠진다. 단둥시가 가까워질수록 강폭은 넓어지고 산은 낮아진다. 단둥시내로 들어선다. 단둥시는 역사에 따라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다. 나당연합군에 의한 고구려 멸망 후 당은 이곳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으며 6·25 한국전쟁 시엔 중국인민군의 병참 전선이 된 곳이다. 압록강 단교에 오른다. 이 다리는 파괴되기 전 한반도와 중국을 이어 주던 중요한 교통로로 1911년 일본이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압록강 하류에 건설했다. 그리고 6·25 한국전쟁 때 미국이 중국의 전쟁 개입을 막기 위해서 B-29 폭격기로 절반을 파괴하여, 현재 중국 쪽 절반 만 남아 있으며 파괴된 북한 쪽 다리는 교각만 덩그러니 드러나 있다. 끊어진 다리라는 뜻에서 `단교`인데 다리 위에 걸어 둔 6·25 한국전쟁 사진과 설명이 눈길을 끈다. 마오쩌둥 사진 옆에 적힌 `항미원조  보가위국`(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고 나라를 지켰다)`라는 글귀에서 6·25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단교에서 70~80m 떨어진 상류 쪽에 세워진 온전한 다리도 본다. 이 다리는 1943년에 건설한 `중조우의교`로 오늘날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이다. 북핵사태로 교역이 금지된 줄 알았는데 오가는 화물차를 보며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압록강을 둘러보기 위해 배에 오른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교각 아래를 통과해 강심에서 신의주 쪽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머리를 돌린다. 더는 나아갈 수 없다. 압록강에 붉은 노을과 어스름이 내린다. 단둥시의 현란한 LED 조명이 강물에 반사된다. 그러나 반대쪽 신의주는 풀벌레 소리만 어둠에 물든다. 아픔과 슬픔과 통곡이 있는 강. 몇 개월 전 읽은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의 탈출기를 떠올리며 한밤중 쪽배를 타고 고국을 떠나며 한 맺힌 눈물을 흘린 곳도 이 강이었다. 그렇게 고국을 그리워했지만 낯선 이국에 묻힌 작가의 슬픔이 흐르는 강이다.

짙어 오는 압록강의 까만 밤을 보며 영화 강철비 중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더 고통 받는다`는 말이 여운을 끈다. 분단은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다. 지금도 한반도를 둘러싸고 관망하는 패권 국가는 남북이 하나 되는 것을 결코 좋아할 리 없다.

슬픔이 깃든 암청색의 압록강을 끼고 숙소로 향하며 나지막이 물어본다. `압록강아 아느냐? 이 아픔을! 우리 민족의 공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줄 수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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