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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處作主 立處皆眞어느 곳에서든지 주인공이 되라. 그러면 서 있는 자리가 모두 진실하다
한중봉 기자 | 승인2018.11.01 16:23|(620호)
보리암에서의 8년을 보내고 이달 말 강원도 선방으로 떠나시는 능원스님. 스님께서는 보리암 주지로 계시면서 장학불사 등으로 많은 지역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8년 동안 보리암에 머무셨던 능원 스님께서 남해를 떠나시며 남긴 말씀은?

 지리산 자락 함양의 선방에서 수행하시던 능원스님은 2010년 11월 17일 보리암에 오셨다. 임기 4년을 두 번 채우시고 10월 마지막 날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라는 말씀을 남기고 강원도 상원사 선방으로 떠나셨다.

 명성 드높은 보리암에 많은 스님이 머물다 가셨지만 능원 스님을 보내는 마음은 또 다르다. 스님께서 남해라는 지역사회에 남기신 그 마음 때문이 아닐까? 스님이 떠나시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8시 김충국 본지 발행인과 함께 보리암에 올랐다. 
 
8년 동안 장학금 3억원 쾌척
 스님이 떠나신다는 소식에 마음이 허전해진 까닭은 스님께서 지난 8년 동안 보리암에 머무시면서 남긴 발자취 때문인 듯 싶다. 오랜 세월 동안 군법사로 포교활동에 힘써 온 능원스님께서 남해에서도 군 포교활동 활동과 더불어 가장 마음을 깊이 쓰신 부분이 지역 학생들을 위한 `장학불사`다.

 부임한 다음 해인 2011년부터 상주중과 남해고를 시작으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아이들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격려했고, 그 이듬해부터는 절을 찾아 부처님의 가피를 청하는 곳은 도움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보리암에서 한 해 동안 대략 4000여만원의 장학금을 군내 중·고 전 학교, 남해초등학교 축구부에 내 놓으셨다. 이를 셈해 보면 능원스님이 계시는 동안 보리암 장학금은 3억원 가량 되는 셈이다. 보리암 장학생은 한 해 100여명이 넘으니 8년 동안 보리암 장학생은 700명이 달한다. 이는 능원스님의 "절이 지역과 떨어져 있으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이끈 일이다.

 아울러 보리암은 장학금 외에도 시주로 들어온 공양미를 지역사회 곳곳에 나누었다. 이 또한 현금으로 환산하면 해마다 3000~4000만원은 족히 된다. 역시 절이 이웃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행한 일이었다. 이 밖에도 능원스님은 범죄피해자 학생들을 돌보는 일에도 마음을 내셨다.
 
남해의 아름다움, 우리가 알아야
 스님께서는 남해시대신문과의 인터뷰 내내 "우리는 남해가 얼마만큼 아름다운지, 얼마만큼 많은 자원을 가졌는지를 모른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아련한 듯 꺼내시는 남해의 바다를 낀 산과 계곡, 하천, 호국의 역사와 함께 한 사찰들, 일몰과 일출, 이락사, 충렬사, 팔만대장경 판각지, 염불사, 화방사-망운산-관대봉, 저수지, 해안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저절로 "아~ 우리가 정말 남해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능원스님은 "남해분들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 자부심과 아집은 다르다. 내가 최고라는 아집을 내려놓고 대화를 해야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데, 대화 부재로 갈등을 겪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며 떠나는 길 말미에 약이 되는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 스님은 "독일마을과 가천 다랭이마을은 시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지만 보리암은 몇백년 동안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오랜 시간동안 남해의 일경으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라시며 "남해의 최고 보물인 보리암을 찾는 발길이 불편하지 않도록 주차장 대책 마련에 남해군과 국립공원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능원스님께서 보리암을 찾는 이에게 선물하는 죽비에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당나라 임제선사의 법어(法語)인 이 글귀는 `처해 있는 곳에 따라 주인이 되라. 그러면 서 있는 곳 모든 것이 참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환경에 따라 불평 말고 열심히 적응해 살다 보면 정도 들고, 어느 곳인들 마음먹기 따라 삶의 진실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고를 최고답게 가꾸려면…
 능원스님의 퇴임식은 지난 28일 아난티 남해에서 있었다. 스님은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처음 부임했을 때 했던 말을 다시 되새기면서 수행과 교화가 부처님 제자의 본분사(本分事)이다. 승복을 입고 사는 것은 내가 믿는 불교가 최고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최고를 최고답게 가꾸려면 많은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그것이 수행이고 교화다"란 퇴임인사로 지난 8년간의 소회를 전했다.

 "막상 훌훌 털고 떠나려고 하니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께 인사도 없이 가는 것은 예가 아닌 듯 해 조촐한 자리에 마련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오셔서 내가 여기에서 그리 못하지는 않았나 보구나 싶었다"는 능원 스님.

 보리암이 위치한 금산이 가을을 맞아 단풍 옷을 갈아입듯, 스님의 빈자리에는 또 다른 덕 높은 스님이 오신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보리암 뒷길을 오르는 기자들에게 작별의 인사로 손을 흔드시는 스님을 보며 "마냥 그리운 것은 그리운 것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중봉 기자  nh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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