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나누며 외로움을 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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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나누며 외로움을 살피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11.01 17:00
  • 호수 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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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응 섭
본지 칼럼니스트

내가 속한 화전봉사회는 24년째 적십자정신을 나누고 있는 순수 남성 봉사단체다. 그 보람을 함께 하고자 참여해보니 선배 봉사원들의 엄청난 경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입 1년 즈음, 총무의 기회를 받고서는 봉사회를 더 활성화할 책임이 함께 따른다는 것을 느꼈다. 재미와 격식을 가진 회의도 시도해 보고 누구보다 솔선수범해 봉사현장을 누비기도 했다. 다행히 조금씩 봉사활동 참여자들이 늘고 봉사 요청도 빈번해지면서, 자연스레 신입 회원의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주로 상급단체나 관공서의 요청에 따라 봉사활동이 이뤄지다보니 참여자들이 갖는 보람과 자긍심은 한계가 있었고, 주도적으로 펼칠 자체 사업이 절실했다. 

이 즈음 A시설에서 우리에게 주거환경개선을 부탁해 왔다. 견적을 뽑으니 도배 장판 등 재료비만 400만 원이 넘었다. 격론을 펼쳐보았지만 매월 1만원의 회비와 생업 중에 잠시 틈내어 몸으로 봉사하는 입장으로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안타깝게도 불가 의사를 전달하고서는 마음이 못내 편치 않았다. 이 고민을 지켜보던 아내가 권한 것이 농촌 재능나눔 사업이었다. 재능을 기부하고자 한다면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었다. 우리 입장에 꼭 맞는 공모사업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고 고민은 금방 해결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과연 제안서 작성과 각종 보고를 비롯해 제반 과정의 수행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더구나 모든 회원들이 주거환경개선에 특화된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머릿속으로 결정과 취소를 반복하다 마감 1주일을 남기고 용기를 냈다. 재능과 의지가 있음에도 지원하지 않는 것은 회피이자 봉사정신에 비춰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즉시 소통 가능한 마을을 선정하고 필요사항을 파악해 나갔다. 당위성을 설명해내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스케줄과 업무배분을 해나가면서 차츰 자신감은 상승해가고 있었다. 선정 소식에 기뻤던 만큼 진행 과정도 착실히 밟아 나갈 수 있었다. 미리 마을을 방문하고 빠진 준비를 챙기는 데 모두는 자발적이었고, 심지어 새벽잠도 포기하고 도배지에 풀칠을 해 작업 시간을 줄이고 타 회원을 배려하기도 했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 올려다보며 하는 도색 작업에 누구 하나 주춤하지 않았다. 진솔한 노력에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가 동참해왔고 노인회에서도 흔쾌히 거들고 나왔다. 남자 손길로는 부족한 청소와 설거지는 물론, 폐기물 처리에도 나서 주었고, 도색 전에 벽면을 미리 닦아 다음 작업이 수월토록 배려해 주었다.

5개 마을을 거치는 동안 언론도 농촌 재능나눔 활동을 취재하고 취지와 소감을 인터뷰했다. 지면과 모바일에서 발견하는 우리 모습이 반가웠지만 사실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모습들은 따로 있었다. 98세 할머니의 겸연쩍게 고마워하는 순수 미소, 장애로 온전하진 못해도 마음은 그대로 느껴져 오는 감사의 몸짓, 늦게 갖고 와 겨우 고쳐서 받아든 방충망에 안도해 하는 어르신의 `휴~`하는 표정, 이 모두가 우리 마음에 선명하게 저장된 기억들로 어느 장면 하나도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재능나눔 활동이 거듭될수록 회원들이 지치기보다 열정을 더 불태운 이유가 여기에 있어 보였다. 활동 중 틈틈이 듣는 사연 속에는 다양한 형태의 외로움이 있었다. 자녀들을 다 키워 보낸 후 갖는 일반적인 외로움에서부터 원하지 않던 장애 속에서 자존감만은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낸 외로움까지 다양한 형태로 우리 곁에 상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사명감이 생겨나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긍정적 희망을 갖는데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회원들 모두가 동의해가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이 마음이 번지며 회원들의 열정도 함께 뜨거워지고 있었다.

2년간의 재능나눔 활동 중 마음 깊이 각인된 이 경험들이 우리들의 자긍심을 강화하고 더 어려운 곳의 요청도 마다하지 않게 할 것임을 확신한다. 아울러 단 한 명이라도 우리들의 활동에서 영감을 받아 주변의 외로움에 다가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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