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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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예의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11.09 13:56
  • 호수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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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화
남해군상공협의회 사무국장
본지 칼럼니스트

  예의라는 말 앞에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좀 무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무거운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예의를 갖는다는 것은 어디 내어놓아도 손색없는 마음이다. 비옥한 땅에서 움을 틔운 내면의 포만감이다.

인간의 예의는 향기로운 꽃과 같다. 내가 설 자리가 어디이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이고 내가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사람의 고급스러운 마음이다.

인간의 새로움은 시대의 조건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을 시대의 자식이라고 말한다. 지금껏 그들이 남긴 흔적을 새겨 보면 우리 사회 발생하는 여러 문제는 인간이 가지는 예의가 부족한 데서 발생한 것이었다.

구성원이 소외당하고 외면받은 것은 지도자가 지녀야 할 인간에 대한 예의 부족이다.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선량한 사람을 아프게 한 일이었다.

국가 존망의 위기를 당하거나 왕위 찬탈의 위험한 형세를 겪었을 때 생명을 바쳐 이를 막아냈던 지도자는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한 것이었다. 이런 지도자의 처세적 명분은 고난을 이기며 그려냈던 평화라서 가슴 절절한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이 가지는 예의는 도덕과 규범마저 초월하는 것이다. 고결하고 거룩한 것이어서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이다.

인간의 예의를 직분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조차도 그의 직분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알록달록 물들이며 낭만과 추억을 선사하는 마음 풍경은 여린 감성을 자극하는 대상이었다. 이제 아련한 추억과 함께 또 다른 씨앗의 잉태를 위해 토양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사명감이었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삶의 무수한 장면을 연상하고 만들어 낸다. 그런 과정에서 예의가 부족한 사람은 마음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다. 내면의 가난이다.

직분에 소홀하다는 것은 결국 예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직분을 망각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내면을 발견해야 하고 발견하기 위해서는 뭔가 찾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예의 있음이 지위에 따라 차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지위를 갖는 지도자는 전달받을 구성원이 많고 소통 경로가 다양해서 예의 역시 더 정중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려면 관찰보다 응시가 필요하다. 관찰은 현상을 주의하여 살펴보는 데 그치는 것이지만 응시는 사물 안으로 생각을 투영시켜 그림자까지 인식하는 것이다.

리더의 예의는 본능적 자질과 함께 문화와 사회의 영향에 따라 계발되어야 할 성숙이다. 무겁지 않으면서 진지하고 정의보다 겸손한 품격이어야 한다. 예의를 갖추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고 예의를 받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시간은 비옥한 내면의 시간이다. 마르고 야위어 가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뿌리와 같은 근원에 대하여 생각해 봐야 한다. 근원은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근원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부재한 것이 현저하게 되고 현저한 것이 부재하게 된다.

인간이 가져야 하는 가치는 결핍을 줄이면서 사물이 지닌 쓸모를 늘리는 것이다. 쓸모의 가장 앞선 기본에 인간의 정중한 예의가 있다.

인간의 예의는 마음의 질서가 붕괴한 심리적 외상을 치유한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가지는 예의, 얼마나 인간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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