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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날 비가 오지 않았다면
남해타임즈 | 승인2018.11.29 12:04|(624호)
이 현 숙
본지 칼럼니스트

이달 9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이번 역시 후진적 사고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라는 거의 공식화된 결말을 비껴가지 못했다.

거처의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인 고시원은 처음 등장할 당시 고시 준비생들이 거주한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지금은 그 자리를 건설 현장 등의 일용직 근로자가 메우고 있다. 통계청이 실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주택으로 분류되는 아파트·단독주택·연립주택 등을 제외한 비주택 주거 시설에 전국적으로 37만 가구가 거주한다. 그중 15만 가구가 만 천여 개의 고시원에 분산되어 있다.

고시원의 장점은 보증금 없이 월세 2,30만 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잠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그 열악성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대로다. 개인실 평균 면적이 5㎡(1.5평)로 국토부에서 고시한 1인 최소 주거면적인 14㎡에도 훨씬 못 미친다. 게다가 재난사고에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확보되지 않은 시설에서 방치되다시피 살아가지만 이곳의 입주민들에게 다른 선택이란 없다.

이번 화재사고는 예고된 참사였다. 해당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인데, 2층과 3층을 고시원으로 사용 중이었다. 전체 면적 282㎡(85평)에 80m의 좁은 통로 양옆으로 52개의 방이 늘어선 구조는 한눈에 봐도 위태롭다. 게다가 1983년 사용 승인을 받은 노후 건물에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되지 않았고 비상벨과 비상탈출구는 무용지물이었다.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한 2009년 이전의 건물이라서 불법도 아니다.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서도 제외되다 보니 소방안전 사각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남들보다 일찌감치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일터를 향해 거리로 나섰을 그들이다. 그런데 비가 오자 하루를 공치고 늦잠에 빠지는 바람에 피해가 더 커졌다. 만약 그날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이른 새벽에 집을 나갔더라면 죽음을 면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불이 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삶은 여전히 팍팍할지 모른다. 당분간은 쓸쓸한 죽음에 관한 기사가 매스컴에 오르내릴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지워질 게 틀림없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왜 우리는 그토록 수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면서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왜 불합리한 제도와 정책의 희생양은 늘 사회적 약자여야 하는가. 그들 또한 우리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다. 그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동절기로 접어드는 이때 경제적 취약 계층이 거주하는 시설의 소방안전을 강화하는 등 화재사고에 대한 철저한 대비부터 필요하다. 사고가 날 때만 반짝하다 마는 안전의식으로는 결코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국토부 관계자의 말대로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를 조사할 때, 면적과 시설기준보다는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듯하다. 차제에 청년들의 주요 주거 공간인 자취방이나 독거노인이 머무는 쪽방촌의 실태도 면밀히 파악하여 이들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만 복지비를 투입하는 것 못지않게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이는지 관리감독 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수급 자격도 없는 엉뚱한 사람의 배나 불린다면 정작 피해는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법을 준수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낸 세금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에 기꺼이 동의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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