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수 향우, 울산 최고의 피부과 대표원장으로 엄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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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수 향우, 울산 최고의 피부과 대표원장으로 엄지 척
  • 전병권 기자
  • 승인 2019.01.03 11:27
  • 호수 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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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울산 최고의 피부과 자리 놓치지 않아
채영수 대표원장.<사진제공 = 채영수피부과>

울산을 대표하는 피부과하면 `채영수피부과`라고 소개 받는다. 1998년 울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공업탑로타리 앞에서 개원을 했고 당시 울산에서는 피부과가 희소성이 높은 병원 업종이었다. 20년이 된 채영수피부과는 현재 울산 남구 내 현대백화점과 롯데호텔, 디자인거리를 끼고 있어 지리적으로도 최적의 자리로 손꼽혀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울산 최고의 피부과 대표원장인 채영수 향우는 여전히 남해인이라는 자긍심과 고향사랑을 보였다. <편집자 주>
 

병원 벽면을 채우고 있는 채영수 대표원장이 그동안 활동한 이력이 담긴 감사패와 위촉패, 상장 등이다. 사진 이외에도 더 많은 전시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교육열이 낳은 엘리트 명가
남해군 서면 남상마을 출신인 그가 연고도 없는 울산에 자리 잡게 됐을까?

남상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가게 됐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은 코흘리개 시절을 함께한 남상초 제26회 동창들. 장남인 채영수(1962년생, 57세) 대표원장은 보건약방을 운영하던 아버지 채규남 씨의 뜻에 따라 부산으로 전학을 가게 되고 삼성중학교를 거쳐 1980년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이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학사와 석사(면역학)를 마치고 인제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를 마친 그때가 1997년. 채영수 원장은 1990년대 당시 인간의 수명이 증가하고 있고 미용에 대한 욕구가 많아질 것을 예견했고, 매 수술마다 빨간 피를 마주하는 스트레스도 상당해 피부과를 선택한 이유도 있다고 한다.

채 원장은 부산 고신대학교에서 피부과전공의(백반증, 피부광화학 전공 등)를 마치고 또한 포항시 한동대학교 선린병원에서 1년 동안 피부과 과장을 역임하고 고신대학교에서 교수 제의가 들어와 복음병원 피부과 교수로 6년간 활동하게 된다. 채 원장은 당시 의사와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울산에서 많은 환자들이 부산을 찾는 상황을 놓고 고민했고, 끝내 아무 연고도 없고 피부과 전문병원이 없었던 울산을 선택하게 됐다. 

이러한 채 원장에게는 2명의 남동생과 1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둘째는 미국에서 활동 중이고 셋째는 경기도 이천 바른병원 채영호 정형외과 원장으로, 막내 여동생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혜화여자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채 원장은 "아버지의 교육열이 우리 4남매를 훌륭히 성장시켜 주셨다"고 고백했다.

의사로서 가치
울산에서 20년 동안 피부과 정상자리를 놓지 않는 채 원장의 가치는 한 마디로 말해 `인간다움`이었다. 

채 원장은 "망막박리를 앓았을 때 병원에 입원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저는 인간적으로 환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의사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후 채 원장은 사회에서 도움을 받은 만큼 다시 환원해야 한다는 일념 아래 울산의사회 봉사단에서도 활동하는 등 의사만이 할 수 있는 봉사들을 펼치고 있다. 

앞서 피부과의 필요성과 인간의 욕구를 예측한 채 원장은 의사에 대해 그리 밝게 만은 전망하지 않았다. 채 원장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환자인구도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육체적으로 힘들어지고 책임이 무거워지는 만큼 점차 3D 전문직으로 볼 수 있다"며 "만약 경제적인 이유를 추구한다면 의사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며 "두 딸에게도 의사의 길은 절대로 가지말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또한 "직업적인 소명의식과 만족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남을 돕는 사명감을 강조했다.

남해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
채 원장은 고향에 대해 늘 빚을 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남해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남해인이라는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울산남해향우회에도 경조사가 있다면 어떤 향우보다 먼저 챙기려고 노력한다. 향우회 행사에 후원도 많이 하는 등 제 능력이 허락하는 한 남해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남해에서 최고의 장면은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놀았던 일"이라며 "논두렁에서 집에 있는 연탄집게로 겨울에 썰매 타다 미끄러지고 웃고 순수하게 놀았던 것"이라며 아련한 추억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이렇듯 채 원장이 마음 편히 만나는 남상초등학교 26회 동창들이 그 기억을 반영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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