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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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1.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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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필자가 갓 대학에 진학했을 당시 이른바 `박동선 미국의회 로비사건`을 중심으로 한 코리아게이트가 미국의회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국제기구소위원회(프레이저소위원회)의 폭로로 인해 커다란 이슈로 대두되었다. 코리아케이트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닉슨대통령의 미군철수 의향과 맞물려 통일교 측과 대미 로비스트 박동선을 이용해 자신에 비판적인 미국의 국회의원들을 매수하려고 했다는 것을 다룬 특별소위원회였다. 이면에는 프레이저의원의 미국대통령 선거에 도전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도 깔려 있었다. 

최근 들어 과거 정권들의 은닉 비자금의 국고 환수를 위한 움직임과 관련해 프레이저보고서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 보고서에 박정희 정권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의 내용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필자가 이야기 하고자하는 것은 이의 사실여부에 대한 정치적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개인의 신념과 그 신념이 만들어 낸 기적 같은 감동으로 젊은 시절 필자를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인간승리의 목격담이다.  

프레이저소위원회는 통일교 측의 증인으로 `박보희`를 채택했다. 당시 한국의 국력으로서는 미국의회에 대항해 미국의 정보력과 권위에 정면도전해 한국의 자존심과 실익을 지켜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국내외의 모든 언론이 `코리아케이트`와 연루된 통일교 측의 굴복, 완패를 예측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박보희는 1차부터 4차례의 증언과정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강조했고 8선의 프레이저 상원의원을 향해 당신은 공산주의에 조력하는 자지만 나는 미군과 함께 공산군들과 싸워 이겼노라고 맞섰다. 

특히 2차 증언 때 "귀하는 마귀의 앞잡이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을 파괴하려는 당신은 마귀다. 무고한 사람들의 명예와 피 값으로 또 다시 상원의원이 될 줄 아시오? 통일교와 대한민국정부는 당신의 이상적인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원한다면 내 목을 치시오. 그러나 내 정신과 영혼은 털끝도 건드릴 수 없을 겁니다. 나를 단죄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하나님이지 당신이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린 후 증언석에 엎드려 분노에 오열했다. 

모두가 예상할 수 없는 발언이었고 프레이저 위원장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린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젊은 날 필자는 신념에 찬 한 인간이 얼마나 당당해 질 수 있는 건가를 보면서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자긍심으로 전율했다. 마지막 증언에서는 "한국인들은 고생은 참아낼 수 있지만 굴욕은 결코 참아낼 수 없다"고 강조하며 이런 비겁한 방식으로 또다시 정치적 야망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코리아게이트 조사 이후 프레이저 의원은 미네소타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낙선해 8선의원의 정치적 운명을 종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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