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은 나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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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地名)은 나의 뿌리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3.22 10:54
  • 호수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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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광장 │ 서관호 본지 칼럼니스트
서 관 호시조시인 / 창선면본지 칼럼니스트
서 관 호
시조시인 / 창선면
본지 칼럼니스트

사람은 누구에게나 국적이 있고 주소가 있다. 그것은 곧 사람이 땅 위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근본성을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성씨가 있고 이름 앞에는 성이 붙으며, 그 성씨는 저마다 다른 본관을 가지고 있다. 가령 김씨라도 김해 김씨, 김녕 김씨 등 본관이 따라다닌다. 이렇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지명은 사람을 어떤 틀 속에 가두게 되고 그 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까 지명은 곧 나의 뿌리인 셈이다.  

여기서 더욱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세간에 `강고집, 최 뿔따구`라는 말이 있다. 그 성씨만 말하면 그 집안의 약점이 될 테지만 다른 집안이라고 해서 특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어느 성씨는 술을 잘 먹고, 어느 성씨는 사람이 좋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면 술 잘 먹는 사람치고 마누라 속 안 썩이는 사람이 없고, 호인이라고 소문난 사람치고 야무진 사람이 없고 보면 이러한 특징들은 약점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추스르는 디딤돌이 돼 가문의 강점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암튼 우리 조상님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경계하는 가운데 공동체의 삶을 더욱 수준 높게 승화시켰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경기도 사람을 경중미인, 충청도 사람은 청풍명월, 경상도 사람은 송죽대절이라 하였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우리 남해에도 지역에 따르는 갖가지 붙임말이 있었다. 가령 `창선 사람은 고춧가루 서 말 먹고 물밑 삼십 리를 간다`느니 `염치없는 남해양반`이라는 말도 있었다. 

때로는 이러한 말들로 자신은 드높이고 타인은 멸시하는 4색 당파적인 지역감정까지 조장하기도 하였으니 오늘날까지도 영호남이 정치인들의 못된 짓거리들로 해서 지역감정의 골이 메워지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창선의 예를 본다면 `산안`이니 `산밖`이니 `물위`니 `물아래`니 하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니 어찌 `섬놈`이라는 말을 자초했다고 하지 않으랴?  


내가 이런 말을 다시 꺼내는 까닭은 이렇게 천지가 개벽할 만큼 세상이 바뀌어도 변할 줄 모르는 인간의 사고방식은 지역에 묶이는 경향이 극심한 바, 내가 소속한 지명부터 바로 쓸 필요가 있고, 일제가 왜 우리 땅의 이름을 허접한 이름으로 바꾸려 하였는지를 알고 지금이라도 바르게 고쳐서 써야 한다는 말이다. 

창선면의 일례를 보자. 신흥리의 경우 본래는 구룡개(龜龍浦)였다. 이것이 발음이 변이하면서 `구녕개`가 되고, 다시 `구멍개`로 희화되면서 정작 동민들은 듣기에 거북할 수밖에 없게 됐다. 때마침 행정이 변혁하는 시기에 현명하신 이장이 계셔서 `신흥리`라고 새로운 동명을 신청하게 되었으니 오랜 옛 마을인데도 새로 일어난(新興) 마을이 됐다. 바라건대, 지금이라도 거북과 용이라고 하는 상스러운 영물을 이름으로 가진 구룡리를 되찾는다면 솔곶이 그 소나무 울창한 곶장이 거북과 용을 닮은 상스러운 마을임을 자랑할 수 있고, 그간에 태어난 빼어난 인물들 또한 그 정기를 받았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왜놈들은 한 지역에서 그 정기를 빼앗고자 쇠말뚝을 박기도 하고, 거북구(龜)자, 용룡(龍)자, 이런 어휘는 지명에서 아예 바꿔버렸다고 하니 일제가 얼마나 교활한가를 새삼 알만도 하다.

또한 서대 마을을 보자. 창선면 동대리와 서대리 사이에는 한재라는 고개가 있다. 이 한재(순우리말로 `큰 고개`라는 뜻)가 언제부터인가 `산두곡`으로 변질돼 있다. 소가 웃을 일이다. 한재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동대리, 서쪽에는 서대리가 있다. 순우리말로 하면 한재 동쪽 마을(東大里), 한재 서쪽 마을(西大里)라는 뜻이다. 한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를 `한재골`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한재 동쪽의 마을을 동한재(동대리의 순우리말 이름) 한재 서쪽의 마을을 서한재(서대리의 순우리말 이름)라 불렀고, 앞에서 말했다시피 한재는 큰 고개(大峙)인데, 여기서 서쪽의 `서`와 한재의 `대`(大)와 고개의 줄인 말 `곡`이 합쳐져서 `산대곡`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재`라고 부르면 되는 것을 혹자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산 두 개 사이의 고개`라고 대단히 왜곡시킨 말로 해석하기도 하는 바(세상에 고개라는 고개는 모두 산 두 개 사이에 있음), 본래의 `한재`를 그대로 부르면 마땅한데, 이외의 왜곡된 말로 부르는 것은 마을의 자존심을 해치는 일이라고 사료된다.

여태 지명을 논함에 있어 그저 끌어다 모으는 방식의 지명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엄청난 오류를 포함할 수 있으므로 그 근본적인 연원을 좇아 살펴볼 필요가 있거니와 행정당국에서도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지명을 한 번 정리할 필요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에는 지면관계로 다루지 못한 북섬, 원산, 보천 등으로 관심을 돌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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