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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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스타일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3.22 10:59
  • 호수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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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어릴 때 가난하고 내세울 것은 없어도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근거 없는 자부심은 남아선호사상을 만들어 삼형제 맏이로 살며 제사지낼 후손을 꼭 가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교만에 신이 가르침을 주려는 듯 결혼 후 딸 둘을 낳았다. 

첫딸을 낳았을 땐 주변에서 살림 밑천이라 해 스스로를 위로했다. 둘째를 임신한 후 태몽과 의사얘기로 아들을 확신했는데 출산일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딸입니다" 하는 간호사의 말에 주저앉았는데, 옆에 계시던 장모님이 지금도 서운했다 할 만큼 둘째딸의 출산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런 둘째딸이 유치원을 다니며 똑 부러지게 말하며 어쩌나 이쁜 짓을 하는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두 동생이 결혼한 후 아들 , 딸 각각 한명씩을 출산했는데 맏며느리가 아들 없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듯 조심스레 하나 더 낳을 것을 의논했지만 아들을 가지지 않음으로서 우리 가정에 다른 행복이 있을 것이라 위로하며 두 딸을 잘 키우기로 다짐했다. 

똑 부러지는 성격의 작은 딸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이성교제를 허락해주길 원했지만 오랜 대화와 토론으로 대학입학 후에 이성교제를 허락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생각했으나, 딸의 생각은 조금 달랐나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가을날 퇴근하던 중 남자친구와 함께 걸어가던 딸을 보았다. 당황한 나는 딸에게 차에 타라 말하고 문이 닫힌 후 집으로 왔는데 딸이 뒷자리에 없었다. 순간 무슨 일인가 했는데 하필 문을 연 자리에 짐이 있어 딸이 반대문으로 가는 시간에 그냥 운전해 집에 와버린 것이었다. 잠시 후 딸이 거친 호흡으로 집에 왔다. 나는 꽤 오랜 시간 꾸중을 했다.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어 서운하기도 했다. 

그 딸이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대학입학과 동시에 아메리칸 스타일로 자기 삶을 살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당황한 나는 "부모 간섭없이 너의 결정대로 살고 싶으면 생활 또한 아메리칸 스타일로 가져가라"고 다그쳤다. 학비도 스스로 벌고 발생하는 모든 일도 스스로 책임지라 했는데 이번엔 딸이 당황했다. 며칠 후 딸은 한국인의 딸로 태어났으니 코리안 스타일로 살겠다고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와 권리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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