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롭진 못해도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자양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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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진 못해도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자양분 됐다"
  • 김수연
  • 승인 2019.04.25 15:05
  • 호수 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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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면 팔랑마을 이장 이재원 씨, 큰아들 초등교사 임용 이어 둘째도 교대 진학

미조면 팔랑마을 이장 이재원·정은숙 씨 부부는 요즘 기분이 무척 좋다. 올초 장남 이현석 군이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해 부산의 한 초등학교 신임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또 차남 이현민 군도 남해고를 졸업하고 형을 따라 서울교대에 입학해 예비교사의 길로 들어섰다.활달하고 교우관계가 좋다는 현민 군은 올해 거제서 열린 58회 경남도민체육대회에 남해군 태권도 일반부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미조초 3학년에 재학중인 막내 현우 군은 둘째 형을 닮아 운동을 좋아하는 건강한 개구쟁이다.

아이들이 공부 잘해서 대학 가고 취직한 걸로 무슨 자랑거리를 삼나 싶겠지만 팔랑마을 이재원 이장의 살아온 궤적을 들여다보면 금방 수긍하게 된다. 부모가 자기 삶을 열심히 살면 아이들도 그 모습 따라 제 길을 찾아간다는 단순명쾌한 이치가 통하고 있어서다.

 53세의 젊은 이장, 고향마을을 품에 안다

 올해 53세로 젊은 이장 축에 드는 이재원 씨는 팔랑마을서 나고 자란 남해 토박이다. 부산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고향이 좋아 바로 남해로 왔다. 새마을금고에서 1년간 근무하다 속셈학원, 공부방도 하고 아내 정은숙 씨와 함께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창선면 출신의 정은숙 씨는 대학 시절 재부남해군학우회에서 만났고 현재 미조병설유치원 기간제교사로 일하고 있다. 고향에 내려와 평범하게 사는 듯했지만 점차 젊은이가 별로 없는 마을의 대소사를 맡아 하나씩 해나갔다. 빤히 보이는 어려움을 모른척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 탓일 게다.

"미조멸치축제 5회부터 10회까지 사무국장을 맡았어요. 당시 축제는 민간이 주도하던 때라 군은 행정적 지원만 하고 마을에서 기획하고 진행까지 다했지요. 그러다 축제 규모가 커지는 바람에 민간이 감당하기가 어려워졌고 그래서 군 주도로 넘겼어요."

마을일에 열심이다 보니 정작 자기 사업이 어려워지고 결국 어린이집 문을 닫았다. 첫째가 대학 들어갈 무렵이었다. 변변한 사교육 한번 못 시켰는데 알아서 잘해주었다. 힘든 시기였는데 큰아이 덕분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2017년 7월부터 팔랑마을 이장 직을 맡았다. 새마을지도자를 1년 하다가 추대를 받았다. 그의 마을 소개는 좀 독특하다.

"우리 마을은 딱 이래요. 팔 안은 바다고 제 가슴은 마을입니다. 양팔이 방파제고 그 끝에 등대 하나씩 있죠. 포근하고 서로 화합하는 마을이어서 좋아요." 어딜 가도 이렇게 딱 이런 포즈로 마을을 소개한다고.

이장일 외에 봉사활동도 한다. 미조면주민자치회 간사로 일하고 있다. 5월 4일(토)부터 6일(월)까지 열리는 제16회 멸치축제 때는 자치회 특화사업으로 옛날사진 전시회를 하려고 한다. "40~50년 전 미조면 풍경을 담은 사진을 모으고 있어요. 기성세대는 옛 추억을 되살리고 아이들에게는 미조의 옛 모습을 보여주려는 취지지요."

낮엔 마을일, 밤엔 편의점서 일하는 이장

하반기에는 면사무소 앞 등대공원 안에 행복도서관을 만들 예정이다. "낮에 아이들과 젊은 엄마들이 공원에 모여 휴대폰 보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더군요. 다문화가정 엄마들도 있고요." 그 친구들을 모아 책도 같이 읽고 발표도 하고 간식도 나눠먹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예산은 군 자치회 특화사업비로 이미 확보돼 있다. 사실 행복도서관은 공중전화 박스 크기의 책 보관소다. 하지만 그곳을 중심으로 미조면 엄마아이들이 함께 알차고 즐겁게 지낼 수 있다면 대형 도서관 부러울 게 없다.

낮에는 이장 업무를 보고 밤 12시에서 아침 7시까지는 미조 편의점에서 시간제로 일한다. 24시간 풀타임 근로다. 하지만 이재원 씨는 즐겁고 행복하다. 애들이 잘 커주니 그것도 위로가 된다. 재미가 있으니까 피로를 못 느낀단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해도 다른 아빠들보다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놀아준 시간들이 오늘의 자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자녀교육을 엄마가 도맡는 게 아니라 아빠도 함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리고 아이들 진로는 아이들에게 맡겼다.

"아이들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이후로도 자신들이 선택할 겁니다. 다만 교사는 학생들 인생에 큰 영향을 키치는 만큼 두 아들이 좋은 선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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