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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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의 고백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5.23 20:07
  • 호수 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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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엽 시인

길 가운데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있기도 힘들다
동제를 지내며 올린 술과 음식은 
가끔 얻어먹지만 
터질 듯한 내 외로움을 아는가
폭풍우가 몰아쳐도 높은 기개로 살고자 해도
늘 푸른 잎으로 감춰진 허리뼈가 휘고
옅은 봄바람에도 깁스한 팔이 흔들린다

어린 가지로 너희들 장래를 위해 훈계하며 살아왔고
내 그늘을 즐겼던 수많은 사람들
이제 찾는 이 하나 없고 종아리 걷은 자들이 그 얼마인데 반성도 않지
건물 가린다고 잘려나가거나 총알박이로 변신하기도 했다
내 발을 차도를 낸다며 다 자르고
숨구멍이 막혀도, 벼락 가뭄 여러번  
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말없이 지내왔다

뼈마디가 욱신거리면 겨우 링거 몇 대로
생색이나 내지만 해마다 동네를 보호했다
취객들이 구토나 하지 말고 쓰레기나 버리지 말게 
아니면 스러진 문학비나 제대로 세우게나
먹고 살라고 겨우 손바닥만 한 땅 몇 평 주고 
너희들이 나를 박대해도 참아왔다
차라리 땔감 신세가 안 된 것으로 만족할까
나이 때문에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지만

그래도 바스락거리는 양팔 벌려 햇빛을 모으고 
대밭에서 날아 든 참새들이 소설 이야기 하고
때가 되면 손자의 손자를 보는 재미로 

더 살아야겠지.

2019. 5. 9. 19:4 북변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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