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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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무상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5.31 11:46
  • 호수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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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칼럼|이현숙
이 현 숙
칼럼니스트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얕은꾀로 남을 속인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중국 송나라 때 원숭이를 사육하던 저공(狙公)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저공이 원숭이들을 정성껏 돌본 덕분에 생각이 서로 잘 통했다.
그런데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원숭이들에게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의 도토리를 주마고 한 것이다. 그 말에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이번에는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이 술책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국민 간에도 통용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국민을 속이려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국가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다.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고 일반 수용자보다 넓은 독방을 차지한다 해서 굴욕이 아닌 것은 아니다. 전직 사법부 수장 역시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차기 대선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던 아무개 씨는 성범죄에 연루되어 1심에서 무죄,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모 도백은 지난 대선에서 댓글 조작과 관련된 혐의로 1심에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권력을 등에 업고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영어의 몸이 되면 답답한 그 심정을 뉘라서 알까마는 결국 자작자수(自作自受)가 아니겠는가. 그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국민의 공복이라 자처하면서 국민을 실망시키고 국가를 욕보인 점,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타인에게 전가한 점 등이다.
정당 지지율이나 정당별 후보자 지지율은 가변적이므로 섣부른 해석은 자제해야 한다. 다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1야당의 지지율은 지난 정권 탄핵과 함께 지리멸렬에 빠졌던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회복세다. 이는 온전히 자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정부가 국정수행 능력이나 인사 정책에 관한 신뢰를 실추한 틈에 어부지리로 만회한 측면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제1야당의 건재함을 확인하고 반가운 마음이 없지 않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며 민주정치의 꽃은 정당정치인데, 정부와 여당을 견제할 야당의 부재는 민주정치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고 추풍낙엽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는 것이 정치의 속성이라면, 어제의 야당이 오늘의 여당이 되고 오늘의 여당이 다시 내일의 야당이 되는 것은 정치판의 숙명이다. 더구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념이며 노선이 바뀌다 보니 그 누구라도 정치 판세는 예측 불허다. 여기에 타협과 양보는 없고 독선과 아집이 들끓는 난장판이 벌어질 때마다 국민의 피로감은 가중된다. 사사건건 극단적인 대립에 앞서 경제와 민생부터 챙김이 옳지 않을까. 흥미롭기는 서로 드잡이를 하다가도 `세비 인상` 같은 공통의 관심사를 놓고 여·야가 대동단결하는 모습에서 그들만의 풍류가 엿보인다.
지나친 권력욕은 때로 추악하다 못해 병적으로 느껴진다. 내년 총선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살살 달아오르는 선거 분위기가 능력도 자질도 없는 천둥벌거숭이들의 헛된 욕망을 부채질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이처럼 인간의 탐욕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할까`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소작농인 파흠은 한 상인에게서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듣는다. 바시키르에 가서 하루 1000불만 내면 해가 하늘에 떠 있는 동안 발로 밟고 다닌 땅 전부를 그 사람의 소유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파흠은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할 욕심에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해가 기울고 출발지로 되돌아왔으나 기진한 나머지 숨을 거두었다. 결국 그의 몫은 자기 무덤이 차지한 3아르신이다.(러시아의 전통 길이 단위, 1아르신 약 71cm)
정치인들만 제 구실을 하면 나라는 알아서 굴러간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정서다. 그런데 민의를 거스르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유권자 알기를 우습게 여기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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