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들과 함께한 시간, 꽃보다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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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들과 함께한 시간, 꽃보다 소중해
  • 하혜경 서울주재기자
  • 승인 2019.06.17 14:11
  • 호수 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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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동산화원 정희정 대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 인정 많고 마음 따뜻한 남해인들에게 이 말은 생활 신조나 다름없다. 기쁜 일에도 슬픈 일에도 마음을 전하고 싶은 남해인들과 함께 30년 세월을 동고동락한 향우가 있다. 바로 강남꽃상가에 자리 잡은 동산화원 정희정 대표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시간동안 향우들의 애경사를 챙겨온 정희정 대표를 만나 살아온 이야기와 바람을 들어봤다.

꽃이 좋아 시작한 꽃꽂이, 화훼 사업가로 변신
고향을 떠나와 서울살이를 시작할 즈음 우연히 접한 꽃꽂이. "어릴 때부터 꽃을 참 좋아했어요. 길을 가다가 우연히 꽃집을 봤는데 그 때 속으로 `나도 꽃집을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생각이 시작이었는데 벌써 꽃과 함께한 세월이 40년을 넘었네요"라며 지난 시절을 떠올리는 정희정 대표.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지금처럼 꽃꽂이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1970년대. 사단법인 화공예협회에 들어가 꽃꽂이 자격증과정을 시작했다.
"그땐 정말 손도 빠르고 감각도 좋다는 칭찬을 무척 많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격인 사범 자격증을 미처 따기도 전에 날 가르치던 선생님이 정신여고 꽃꽂이 강사로 추천해서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한 번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라면 끝을 봐야하는 성격답게 꽃꽂이와 관련된 자격증 취득에 도전해 지난 1992년엔 사범자격증 최고등급까지 취득했다.

동산화원 열고 향우들과 인연 맺어
꽃을 좋아하는 마음에 손끝도 야무져 그녀가 만든 꽃꽂이 작품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학교 강의도 하고 관공서에 매주 월요일에 납품하는 꽃꽂이 작품도 수십 개를 만들어 납품할 정도로 인기만점이었다. "처음엔 강의하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다 1985년 동산화원을 오픈했죠. 꿈꾸던 꽃가게 사장이 된 거에요. 하지만 사업은 또 다른 영역이었어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영업능력은 또 다른 이야기더군요. 그래서 향우회에 문을 두드렸죠."
젊은 여자향우가 귀하던 그때 정 대표는 향우회에 참여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서울 향우님들에게 받은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를 정도에요. 고향사람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30년 동안 거래하는 분도 계십니다. 꽃 배달 부탁을 하면서 서로 안부도 묻고 단지 사업적인 거래가 아니라 친분이 쌓여가는 느낌이 들고 이제는 가족 같아요."

김영란법으로 주춤했지만 새 활로 모색
특유의 친화력과 꼼꼼함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무렵 위기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2015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통과되면서 화훼업계에 치명타를 입힌 것이었다.
"함께 꽃장사를 하던 동료들이 많이 이 업계를 떠났어요. 마음을 전하는 꽃인데 이걸 부정청탁으로 보나 싶어 참 안타까웠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죠. 새로운 환경에 맞춰 꽃값도 내리고 이제는 이 시장에 적응한 화훼업자들만 살아남았어요"
정 대표도 그 살아남은 사람들 중 하나다. 그녀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동산화원`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욕심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입은 예전보다 줄고 향우회에도 꽃집을 하는 후배들이 생기면서 예전처럼 일거리가 많지 않아요. 하지만 적게 벌면 또 적게 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으니 새로운 길이 보이더군요"라는 정희정 대표. 많아진 시간에는 교회 꽃꽂이 봉사도 하고 향우회 행사에도 참여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꽃을 통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일이 가장 큰 보람"이라는 정희정 대표는 오늘도 고향사람들의 애경사에 보낼 꽃송이를 매만지고 있다.
하혜경 서울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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