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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생이다이현숙(본지 칼럼니스트)
남해타임즈 | 승인2019.06.21 17:30|(652호)

물리적 나이에 맞지 않게 생물학적 노화의 실체를 체현한 계기가 있다. 머리 위로 태양이 작열하던 어느 해 여름, 어느 고즈넉한 산사에서의 일이다.
사찰문화를 한 번쯤 제대로 체험하고 싶던 차에 모 사찰에서 주관하는 여름 수련회에 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막상 산문에 들어서자 이방인으로서 어색함과 긴장감이 조금 느껴졌다. 어쨌거나 결코 쉽게 얻은 기회가 아닌 만큼 의미 있는 시간과 추억이 되게끔 정진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피소정념(避騷靜念)의 의미를 접목시킨 묵언수행에 대한 기대감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설레었다.
첫날부터 좌선, 108배, 설법, 울력 등 땀에 젖은 수련복이 마를 새 없는 강행군이었다. 마침내 길고 긴 하루 일과가 끝나고 취침시간이 되어 도반들과 잠자리에 몸을 뉘였다. 그런데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 이 낯선 조합 때문인지 영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참선 자세를 취하려는데, 맞은편의 노 보살 한 분이 연신 몸을 뒤척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밤 막역지우라도 만난 양 우리는 흉금을 터놓았다.
보살님은 오랜 세월을 불자로 살아오면서 불교와 관련된 경험이 풍부한 분이었다. 이번 역시 의욕적으로 동참했지만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토로하셨다. 그 연세에 출가(?)를 결행한 것만도 여간한 결심은 아닐 터인데 시작부터 컨디션 난조를 겪으시니 안타까웠다. 고민 끝에 어깨와 등을 안마해 드려도 되겠느냐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러자 자신의 몸에 타인의 손길을 허용하는 것은 평생 처음이라면서도 선뜻 내 앞에 등을 내미셨다.
80을 훌쩍 넘긴 노구에 두 손을 얹은 그때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질적인 촉감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듯했다. 마치 뼈와 살이 분리된 것 같은 매우 생소한 자극이었다. 누군가에게 몸을 맡기고 마음이 이토록 편안한 게 꿈만 같다고 되뇌는 보살님의 음성이 나의 귓전에서 맴돌았다. 행여 그분에게 얼굴 표정이라도 들키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 희미한 취침용 전등불 아래 마사지를 이어갔다.
노화의 실체와 맞닥뜨린 그날의 충격은 오래도록 뇌리에서 가슴에서 손끝에서 좀체 가시지 않았다. 백 번의 설법을 듣고 백 권의 경전을 읽는 것 못지않게, 나고 늙고 병들고 떠나야만 하는 인간의 원초적 고통을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뒤로 `생즉멸`을 화두로 삼아 이따금 명상을 즐기는데 탐심을 줄이는 데 효과를 봤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건만 늘 자신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뭔가를 갈망하는 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호의호식이 존재 이유의 전부인 양 희희낙락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가진 것이 변변치 않아도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 부모와 자식 간의 친애가 있다면 행복의 조건에 비춰 볼 때 불리할 게 없다. 정작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넣는 것은 마음의 시선을 바깥에 둔 채 손에 쥔 행복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망자의 집인 음택의 호화 사치를 목격하고 나면 더욱 씁쓸해진다.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의 봉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봉분 아래를 호석으로 둘러치고,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석을 두고, 봉분 양편에 장명등과 망주석 등 갖은 장식물들로 치장해 놓은 광경은 백골에 곱게 분칠을 한 것만큼이나 부조화를 이룬다. 세상 떠난 조상을 위해서도 아니고 후손들이 발복을 바라며 무덤을 꾸미는 것이 헛짓거리가 아니면 무엇인가.
과거 인도인들은 삶을 네 가지 주기로 나누고 생로병사에 목매지 않는 삶을 살았다. 학문을 연마하는 범행기(梵行期), 결혼해 일가를 이루고 집안을 건사하는 가주기(家住期), 집을 떠나 자연에 거처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임서기(林棲期), 이마저도 버리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려 이리저리 떠돌다 죽음을 맞이하는 유행기(遊行期)가 그것이다. 무엇이 그리 부족해 무엇을 그리 바라는가. 특별할 것 없이 무심히 흘러가는 오늘 하루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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