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추억에서 끌어올린 클래식 음악의 푸른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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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추억에서 끌어올린 클래식 음악의 푸른 물결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7.08 16:34
  • 호수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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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욱 작가의 문화현장 탐방

체르니우치 행복콘서트를 다녀와서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들었다. 꽤나 이른 때부터 별난 음악을 들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계기는 단순하고도 타산적(?)이었다. 지금은 EBS에서 방송하는 `장학퀴즈`가 그때는 MBC 전파를 타고 매주 일요일 아침에 우리 곁을 찾아왔다. 1973년에 첫 방송이 나갔다고 하니, 47년의 나이테를 가진 장수 프로그램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를 사는 사람이라면 진행자 차인태 씨의 지적인 목소리가 기억나리라.
그 시절 일요일, 해가 뜨면 나는 알 수 없는 긴장에 몸을 곤두세웠다. 아버지가 한 문제를 맞힐 때마다 백 원을 격려금으로 주셨다. 우리 형제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문제를 놓칠세라 조바심을 냈다. 매주 얼추 열 문제 안팎을 맞혀 괜찮은 용돈벌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예술 문제가 나왔다. 음악을 들려주면서 곡의 작곡가와 제목을 맞혀보라고 했다. 너무나 익숙한 곡인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작곡가는커녕 제목조차 떠오르질 않았다. 결국 나는 분루를 삼키며 문제를 포기했는데, 답은 바다르체프스카(T.Badarzewsk, 1837~1861)의 `소녀의 기도(Madchens Wunsch)`였다. 이 갓난아이처럼 깜찍하고 비온 뒤 갠 하늘처럼 청명한 피아노곡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24세 젊은 나이로 요절한 폴란드의 여류 작곡가는, 나중에 딸이 태어나면 들려줄 작정으로 18세 때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이후 나는 KBS 클래식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요즘에야 유튜브에 들어가면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다 들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가욋돈만 생기면 클래식 CD를 사 모으는 게 낙이었다. 몇 만 장에 이를 소중한 CD들은 창고 속에 잠들어 있지만, 지금도 나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곤 한다.
지난 주 목요일 읍내 문화체육센터 다목적홀에서 있었던 체르니우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김영근)의 행복콘서트를 들으러 가면서 나는 유년 시절의 아련한 옛 추억을 반갑게 되씹었다. 남해에 온 지 7년째건만 나는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클래식 음악 연주를 이곳에서 맛볼 기회는 갖지 못했다. 아직 남해가 예술 분야에서는 변방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어도 설렘은 사뭇 새로웠다.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콘서트에서 나는 귀와 눈으로 누릴 수 즐거움을 만끽했다. 체르니우치는 유럽의 변방 국가 우크라이나에 있는 도시다. 우크라이나의 수도는 키에프인데, 체르니우치 시는 서부 지역에 있고, 인구는 24만 명(2001년) 정도다. 유서 깊고 아름다운 체르니우치 대학교가 유명한데, 오케스트라는 이 대학이나 이 도시 출신 음악가들이 결성한 연주단체인 듯하다.
콘서트의 첫 곡은, 유년 시절 클래식 음악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억하라는 듯 칼 오르프(Carl Orff, 1895~1982)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에 나오는 `오, 운명의 여신이여(O Furtuna)`가 장식했다. 이후 해금연주자 강민승과 소프라노 이혜원, 바리톤 정승화 등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들려준 아름다운 곡들은 더위와 장마에 찌든 청중들의 묵은 체증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콘서트의 대미는 우리 남해가 자랑하는 남해합창단(단장 신철호)의 몫이었다. 강선희  선생이 지휘하는 합창단은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행복을 주는 사람`을 선사했고, 단원인 소프라노 최정아 씨는 `꽃구름 속에`를 열창해 갈채를 받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남해는 푸른 음악의 물결에 흠뻑 젖었다. 콘서트 영상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서 `새남해`를 검색하면 즐길 수 있다.
콘서트는 200여 분 청중들의 열화 같은 호응에 춤추며 고조되었다. 뜻 깊은 행사였음은 분명하지만, 그렇기에 아쉬운 점도 있었다. 다목적홀은 클래식 음악 연주장으로서는 많이 부족했다. 무대와 청중석 위로 뜨거운 조명이 내내 내리쬐어 눈이 시릴 정도였으니, 연주자들로서도 고충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그램이 준비되지 않아 무슨 곡이 연주되는지 알기 어려웠고, 뒷벽에는 그 흔한 알림막조차 걸리지 않아 허전했다. 예술 공연을 최적의 조건 아래 감상할 수 있는 문화예술회관이 세워지면 남해사람들도 수준 높은 예술의 향연 아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날을 꿈꾸면서 나는 음악의 여운에 젖은 채 발길을 돌렸다.          <사진제공^유튜브 `새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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