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는` 서변동 `제지다꽃밭`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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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게 없는` 서변동 `제지다꽃밭`을 아시나요?"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9.07.08 16:44
  • 호수 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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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변동노인회와 남해대학 원예조경과 학생들이 함께 만든 `제지다 꽃밭`. 이곳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다 있는 듯 하다.

 남해읍 서변마을 아산교 옆 도로를 지나다 보면 별로 크지 않은 규모에 알록달록한 꽃들이 어우러진 꽃밭이 눈에 띈다. 꽃밭 한가운데는 `제지다꽃밭`이라는 푯말이 꽂혀 있고 길가에는 행인에게 꽃 보며 잠시 쉬어가라는 듯 중고 나무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소박하게 차려놓은 정성과 인정에 지친 마음 한자락 내려놓고 꽃을 바라보게 된다.
 이 꽃밭은 서변마을노인회 야생화보급봉사단과 남해대학 원예조경과 학생 15명이 지난달 28일부터 이틀간 작업해 만들었다. 달맞이꽃, 매발톱꽃 등 토종 야생화와 매리골드(금잔화), 달리아 등 서양화, 로즈마리, 라벤더 같은 허브식물 등 각양각색의 풀꽃들이 한가득 피어난 이곳은 서변마을 쉼터 `제지다꽃밭`으로 재탄생했다. 서변마을 길가에는 이들의 수고로 라벤더와 백일홍, 금련화가 자라는 대형화분 80개도 늘어섰다. 덕분에 마을길이 훤해지고 쾌적해졌다. 앞으로도 250개의 화분이 더 나올 예정이다.

아침저녁으로 제지다 꽃밭을 가꾸는 서변마을 정성
명 노인회장

 그런데 누가 이 일을 주도하고 이런 꽃밭을 가꾸었을까.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 말을 빌리면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잡풀을 뽑고 꽃을 다듬는 모습이 아침저녁으로 눈에 띈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그 주인공을 찾았다. 바로 정성명(79) 서변마을 노인회장이다.
 서변마을노인회는 작년부터 꽃가꾸기 활동을 시작했고 전시회도 한번 가졌다. 올해는 노인회 회원들이 꽃모종의 절반을, 남해대학 원예조경과 학생들이 나머지 절반을 심었다. 야생화보급봉사단과 서변노인회 회원 20명 정도가 꽃가꾸기 활동을 주로 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꽃밭을 돌보는 이는 정성명 씨다.
 "집이 가까우니 아침저녁에는 내가 나와서 관리합니다. 야생화는 겨울에도 잎이 살아있는 게 있고 허브 계열은 꽃이 초겨울까지 피기도 합니다. 1년 내내 마을에서 꽃을 볼 수 있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요." 화분은 동네에서 거둬 야생화보급단 회원들이 심고 집 안팎에 놓을 수 있도록 개인에게 무료로 분양한다.
 `제지 다`는 남해 사투리인데 `모두 다`, `전부 다`라는 뜻이다. "뜻밖에 간판 만드는 동네사람이 무료로 푯말을 세워줬어요. 원래 붙이려던 `세계의 야생화 전시장`이라는 명칭은 나중에 붙일 계획입니다." 이를테면 `전부 다 꽃밭`이라는 이 근사한 이름은 그렇게 우연히 탄생했다.
 정원은 한가운데에 세 개, 양 가장자리 입구 쪽에 하나씩 총 다섯 개의 큰 원을 두고 그것들을 둘러싸는 형태로 만들었다. 남해대학 원예조경과 이정화 교수 설계를 조금 고쳐서 만들었다고.
 이 꽃밭에는 우리나라 토종 야생화가 많다. 우리 야생화는 크지 않고 소박하다. 서양 야생화는 크고 화려하다. 항아리, 절구통 같은 생활용품도 군데군데 놓여 꽃과 어우러진다. 옛날 이것들을 사용했던 분들이 친밀감을 느끼도록 같이 두고 꾸몄다.
 정성명 씨는 고현초, 남해중, 제일고의 전신인 남해종고 교사를 거쳐 상주중 교장에 이르기까지 30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종고에 재직하면서 야생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상주중 재직 때는 국화 전시회를 20차례 열기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키우는 데는 이보다 좋은 게 없다 싶어 꽃가꾸기를 시작한 게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이 가슴에 더 와닿는 요즘입니다. 대기, 토질, 수질이 오염되는 건 어떤 면에서는 숲이나 야생화, 꽃나무를 안 가꾸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지구를 아름답게 살리는 길 아니겠습니까."
 정성명 씨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비가 와도 꽃을 보러 나온다. "꼭 손볼 데가 생깁니다. 달리아는 시든 꽃을 떼어줘야 새움이 올라와 꽃 몽우리가 맺히고 꽃이 핍니다. 손을 안 보면 꽃밭이 잡초밭이 되고 말아요."

 시골일수록 꽃을 가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산도 많고 나무도 많아서라는데 그는 고개를 젓는다. 환경문제도 근본적인 해법이 이런 데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은 어찌 챙기시느냐는 질문에 전에는 등산도 가끔 했으나 지금은 꽃밭 돌보기도 빠듯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건강이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지만, 이걸 하니 견딜만하고 마음이 편해요. 잡념이 안 생기거든. 이게 건강의 비결이겠지요."   
 겨울이 되면 잎과 줄기는 지겠지만 뿌리는 살아 움이 틀 테니 내년에도 한결같이 꽃밭을 가꾸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다.
 김수연 기자 nhs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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