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창선 당항리 지석묘와 비파형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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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창선 당항리 지석묘와 비파형동검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7.19 10:24
  • 호수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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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군 기록이야기 2 │ 여창현 연구사

남해시대신문이 지난호부터 남해군청 이미숙 기록연구사와 관광진흥담당관실 문화재팀 여창현 학예사, 남해유배문학관 김연희 학예사의 도움을 받아 `보물섬 사람들의 기억, 박물과 기록으로 만나다`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 두번째 마당으로 여창현 학예사의 `남해군 기록이야기 ②- 창선 당항리 지석묘와 비파형동검`을 싣는다.

여창현 군 관광진흥담당관 학예연구사
여창현 군 관광진흥담당관 학예연구사

  지난 6월 말 창선면 당항마을 일원의 국도 3호선 공사부지에서 청동기시대 지석묘(고인돌) 2기와 함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지석묘에 대한 발굴조사는 국도공사 구간이 기존에 알려진 `당항리 지석묘군` 유적의 범위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공사 이전에 구제발굴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당항리 지석묘군은 「남해군지」(南海郡誌)와 「남해군 문화유적분포지도」(南海郡 文化遺蹟分布地圖) 등에 지석묘 상석(上石) 13기가 존재한다고 보고되었으며, 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지석묘의 상석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지석묘의 상석이 이번 발굴조사에 포함되었다.

경남지역의 청동기시대 무덤은 강(하천)과 해안을 중심으로 밀집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양상은 경남의 지리지형적 조건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러한 환경적 요소는 성숙한 농경을 중심으로 들어선 청동기시대 후기의 조건에도 유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남해안은 큰 섬과 반도를 중심으로 바다를 통한 상호왕래가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이다. 시기는 내려가지만 삼한시대의 사천 늑도 유적에서 보이는 중국, 일본과의 교류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현재의 우리는 그들이 살던 공간에서 2500년이 지난 오늘날, 그들이 남긴 기념물인 무덤과 흔적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비파형동검 모습.

청동기시대 지배층과 비파형동검
현재 김해 구산동 남산바위공원 옆에는 발굴조사 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350톤이 넘는 지석묘의 상석이 잠들어 있다. 무덤의 주인공을 위해 마련한 제단시설의 길이가 85m에 달한다. 단연 국내 최대의 지석묘이다. 당시 청동기시대 사회의 위계(位階)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는 이와 같은 무덤의 규모와 주인공을 위한 부장품의 종류와 구성 정도이다.
이번에 발굴 조사된 당항리 1호 지석묘의 상석은 23톤으로 추정되며 그 아래에 마련된 석관묘(돌널무덤)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2호 지석묘는 상석을 포함해서 무덤 주인공을 위한 제단시설의 길이가 30m 정도로 추정된다. 무덤의 규모는 무덤 축조에 동원되는 노동력의 양과 질을 추정 가능하게 하며, 비파형동검과 같은 부장품은 위신재(威信財)로서 희귀성, 상징성, 장거리 교역을 통한 수입품의 독점 등 무덤 주인공의 권위를 표현한다.
경남지역 지석묘 내 출토유물은 석검(돌칼), 석촉(돌화살촉), 단도마연토기(붉은 간토기), 곡옥, 청동기 등으로 다른 지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특히 전남 해안지역의 출토양상과 비슷한 점이 많다. 지석묘가 많이 분포하는 호서지역이나 전남 남해안지역은 위세품을 통해 무덤 간 위계가 잘 나타나지만 남해군을 포함한 영남 남해안 지역은 부장품이 아닌 무덤의 규모로 위계를 나눌 수 있다.
남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지석묘로 알려진 마산 진동리 유적, 사천 이금동 유적, 창원 덕천리 유적, 김해 율하리 유적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검의 부장보다는 거대하고 특출한 무덤의 규모로서 유력자의 힘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을 볼 때, 당항리 지석묘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의 의미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출토된 비파형동검은 3조각으로 깨어진 채 주인공이 안치된 공간 외부에서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유물의 위치나 상태는 당시 사람들의 의례행위의 결과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파형동검은 경남지역 내에서도 거대한 기념물로 여겨질 만한 몇몇 유적에서 드물게 확인된다.

지석묘 전경.

남겨진 지석묘와 경관
`가야사 연구복원`이 국정과제로 추진되면서 가야의 주요 세력을 대표하는 고총고분(高塚古墳)은 그 웅장한 자태와 함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경남지역에 산재해 있는 624곳의 청동기시대 지석묘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겨져 있으며, 남해군에 분포한 지석묘만 23곳이 알려져 있다. 이 중 이동면에 위치한 다정리 지석묘군 1곳만 지정문화재이며 나머지는 모두 비지정문화재이다.
청동기시대 유적의 성격상, 특히 무덤의 경우 상석으로 상징되는 기념물이라는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발굴조사 후에는 빌딩숲으로 채워지고 도로 밑으로 들어가는 광경이야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편의를 위한 명분일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당대 최대의 기념물이자 랜드마크인 그들의 경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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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웅 2019-11-21 21:10:11
남해에서 비파형동검이 발견되었다니 정말로 놀랍습니다!!

강보라 2019-10-29 13:22:56
남해에서 비파형 동검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너무 놀랍습니다. 남해인으로서 자긍심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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