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숨결을 톺으며 마음의 여운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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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숨결을 톺으며 마음의 여운을 새기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7.22 11:47
  • 호수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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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종욱이 만난 남해문화단체 20

작가 임종욱은 2012년 장편소설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로 제3회 김만중문학상 대상을 받자마자 남해로 내려와 창작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현재 진주교육대학교에서 문학과 작문을 가르치고 있고, 본지에 <남해문화단체 탐방기>를 연재하고 있다.
2019년 1월부터 <현대불교신문>에 남해에서의 생활을 소개하면서 부처와 공자의 말씀을 곁들인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남해서각동아리 木소리를 찾아서

수필가 이양하 선생은 <나무송(頌)>이란 시를 써서 나무의 미덕을 노래한 적이 있다. 그는 이 시에서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고, 고독(孤獨)의 철인(哲人)이며,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면서 윤회가 가능하다면 다음에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나무가 주는 혜택을 어떻게 한 마디로 가름할 수 있을까?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나무가 광합성을 통해 토해내는 산소가 있어 생명을 유지한다. 나무는 더위도 씻어내고 추위도 막아준다. 땅 밑으로 단단히 뿌리를 내려 실팍한 자태를 유지하고, 때로는 꼿꼿하게 때로는 구불구불 자연이 주는 대로 그 천성에 따라 하늘을 우러러보며 제 삶을 지킨다. 거기다 한 해의 세상살이를 나이테로 남겨 우리에게 세월의 불가역성(不可逆性)을 일깨워준다.
나무는 인류가 처음 사용한 도구의 재료가 되었고, 집을 지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지혜와 경험을 나무에 기록해 기억의 한계를 이겨내기도 했다. 대나무로 만든 죽간(竹簡)이며 나무판을 새겨 찍어낸 목판본(木版本)이 없었다면 이 냉엄한 자연의 파도에 온전히 몸을 싣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는 어려서는 장난감도 되고 늙어서는 지팡이도 되어준다. 한 번 주위를 둘러보라. 돌과 쇠가 아무리 단단하고 쓸모 있다 해도, 유연과 강직을 겸비한 나무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더구나 남해는 나무의 고장이라 일러 부족할 게 없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민생(民生)이 허덕일 때 부처의 가피력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팔만대장경 대부분을 판각한 고장이 여기 남해다. 글자 하나하나를 새겨가면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던 그때 남해 사람들이 남긴 숨결은, 여전히 남해에 삶을 지탱할 산소를 공급하고 있다.

이곳 남해에서 나무의 미덕을 본받아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조각도를 들고 손바닥에 난 굳은살을 나이테 삼아, 나무를 평생의 벗으로 여기면서 목각(木刻)에 혼을 담아내는 분들이다. 남해목각동아리 `木소리`(회장 전애자·사진) 회원들이 그분이다. 마침 이 동아리가 지난 9일부터 오는 21일(일)까지 읍내 유배문학관 전시실에서 작품전 "함께 가는 길"을 연다기에 찾았다.
木소리 모임은 연륜이 길지는 않다. 작년 남해에 귀농, 귀촌한 분들을 위한 교육이 군청의 도움으로 열렸었다. 남해에서 서각공방 `이소하우징(창선면 소재)`을 운영하는 목운 조효철 선생의 지도를 받아 목각의 재미에 흠뻑 빠져, 여기서 만난 분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단다. 그때 30여 분이 참여했는데, 지금도 15분 정도가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창선 공방에 모여 목각 실력을 키워나간단다.
멋진 모자를 쓰고 예술가 풍모가 물씬한 회장 전애자 선생은 만나자마자 목각과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리고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번이 첫 작품전인데, 초보를 갓 벗어난 실력이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차분히 작품을 둘러본 나로서는, 이분들이 작품에 쏟는 열정은 대가 못지않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홉 분의 작품 5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무의 결에 수놓인 각양각색 개성 넘치는 목각에는 회원마다의 체온이 따뜻하게 스미어 있었다.
모두 기억에 담아둘 작품이었지만, 특히 박태웅 선생이 빚어낸 방상시(方相氏) 탈 조각이 눈길을 끌었다. 연꽃을 예쁘게 새겨 채색한 최미정 선생의 <달빛연꽃>은 내 방에 걸어놓고 싶은 충동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앙증맞았다. 연륜이 짧은 만큼 당장 큰 욕심은 부리지 않는단다. 그저 더욱 실력을 갈고 닦아 다음 작품전을 기약할 뿐이라는데, 벌써 연장 전시 제안이 들어올 만큼 호응이 좋다면서 보람도 감추지는 않았다.
이 나무의 숨결과 만나고 싶은 분이 있다면 공방 주인 조효철(m.010-9131-8702) 선생에게 문의하시길 바란다. 아니 오늘도 전시가 여전할 유배문학관을 찾아 먼저 나무와 인사할 기회를 가져도 좋겠다. 우리 몸 어딘가엔 분명 나무의 유전자가 핏줄을 타고 흐를 터이니, 오랜만에 혈육과 재회하는 흥분에 몸이 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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