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도 폭우도 한 방에 날려 보낸, 예술들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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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도 폭우도 한 방에 날려 보낸, 예술들의 몸부림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8.02 16:32
  • 호수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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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욱 작가의 탈촌, 영화제 탐방기
임  종  욱
작가

탈촌과 유배문학관에서 열린 예술 행사를 보고

지난주는 날씨가 참으로 변화무쌍했다. 찌는 더위가 사람들을 허덕이게 하더니 주말께에는 질풍을 동반한 폭우가 한바탕 북새통을 일으켰다. 땡볕을 맞으며 아이 돌보듯 심어둔 농작물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생겼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의 집에 갔더니 토마토 넝쿨이 줄다리기에 밀린 듯 벌러덩 쓰러져 있었다.
파랗고 빨간 토마토 알들이 집 잃은 고아마냥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힘을 모아 일으켜 세우고 버팀목을 대긴 했지만, 수확의 반은 줄어든 모양이다. 어디 그 댁뿐이겠는가. 농사를 짓는 분들마다 비바람에 눈을 흘기며 한 톨 한 뿌리라도 더 살려보려고 동분서주하셨다. 농사를 짓는 게 죄는 아닌데, 가물면 메말라서 걱정이고, 쏟아지면 넘쳐흘러 근심이다.
자연 재앙은 없을수록 좋기는 한데, 이왕 닥친 곤욕이라면 액땜 치렀다 여기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도 지혜일 듯싶다. 자, 그런 근심 걱정을 훌훌 털어내고 힘을 북돋는 길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사람마다 시름을 푸는 방법이야 다양하겠지만, 예술 공연 참가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피곤하고 어지러운 심사를 잠시 내려놓고 아름다운 노래와 춤, 영화를 보노라면 흥도 나고 신명도 잡혀 다시 일터로 나갈 힘이 샘솟을 듯하다.
지난 주말에는 폭우를 무색하게 만드는 다채로운 문화 예술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나는 동네 분들과 함께 그 행사를 찾았다.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에서 세 차례, 유배문학관에서 한 차례 진행되었는데, 하나같이 감동과 흥겨움이 그득한, 산해진미의 잔치였다. 돌아본 순서대로 그 즐거운 경험들을 풀어놓아 보자.

지난 21일 탈촌에서는 전통공연예술단 `타혼`의 신명나는 타악 연주무대가 펼쳐졌다.
지난 20일 탈촌에서 선보인 그림자 인형극.

탈촌 기획전 흥미 더해
탈촌 2층 홀에서는 리모델링을 끝내고 새롭게 단장한 탈 전시회가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아시아 탈의 신비, 그림자에서 찾는다`란 타이틀의 기획전이 흥미를 더했는데, 우리나라와 중국 등지에서 오래 전부터 공연된 그림자 인형극을 현장에서 본 것은 기대 이상의 반가움이었다.
개장식답게 군민들과 군수님, 군청 관계자 분들이 오셔서 오프닝 행사도 가졌다. 줄지어 서서 오색 띠를 자르는 자리에 어떻게 하다 보니 나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가위가 탐이 나 기념으로 가져가도 되는냐고 물었더니, 안내하던 분이 겸연쩍게 웃으며 곤란하단다. 그래서 내가 자른 오색 띠만 가져와 내 방 벽에 걸어두었다.
그림자 인형극은 우리나라에서는 `만석중놀이`라 해서 고려시대 때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 열렸고, 중국에서도 지방마다 특색 있는 그림자 인형극이 전승되고 있다. 실연(實演)을 보여줄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아 맛만 본 점이 아쉽지만, 독에 든 된장을 다 먹어보아야 장맛을 아는 건 아니다. 전시는 지금도 계속되니 짬을 내 찾아보면 진귀한 추억이 될 것이다.
바로 이어서 여성국극 공연이 1층 공연장에서 있었다. 중요 무형문화재 `발탈` 보유자인 조영숙 선생이 이끄는 전통 풍악 잔치였다. 여든 살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기운이 당당했고, 목소리에도 혈색이 돌았다. 여성국극은 말 그대로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국극(國劇)이다. 전쟁이 한창일 때 뜻을 함께 한 예인(藝人)들이 난민들에게 위로와 기쁨으로 주고자 시작했는데, 어느덧 70년 세월이 지났다며 감회를 밝혔다.
재치와 율동을 넣어가며 흥겹게 이어지는 민요와 판소리 춘향가의 몇 마당을 보노라니, 박수가 절로 나와 폭우가 준 근심 따위는 손흥민이 공을 차듯 골문을 뚫고 날아갈 기세였다. 더구나 폭우를 뚫고 탈촌으로 달려온 분들이 160여 분이나 되었다. 자리가 모자라 서서 보거나 방석을 깔고 앉아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탈촌 개관 이래 최대 관객이 오셨다면서 일하시는 분들의 입이 함지박만해졌다. 다음 달에도 유쾌한 공연이 이어진단다. 많이들 찾아오셔서 무대까지 미어터지는 만루홈런을 쳐 촌장님이나 직원 분들의 입이 아예 찢어지게(?) 만들어도 좋을 성싶다.

2019 시골영화제 부대행사인 재일조선인 역사와 관련 자료 전시회에 관심을 보이는 관람객들.

`2019 시골영화제`의 첫 상영
국극 공연의 여흥(餘興)이 가시기도 전에 우리들은 유배문학관으로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남해군이 후원하고 둥지기획단이 준비한 `2019 시골영화제`의 첫 상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행사도 11월까지 매달 한 편씩 상연되는데,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날 본 영화는 김명준 감독이 제작한 <우리학교>라는 작품이었다. <아래 왼쪽사진> 일본 홋카이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인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의 애환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쳐내야 했다. 분단의 아픔은 이 땅에서만 진행형이 아니고 바다 너머 일본에서도 격분에 차 있었다. 지금 일본의 아베 정권이 갖은 야비한 수작으로 우리 경제를 갉아먹고자 난동을 부리고 있는 참인데, 교포 3세들이 우리 글과 말, 얼을 잊지 않고자 배움의 장을 연 것이 못마땅해 들쑤셔대고 있었다.
해방 전후에는 540개에 달하던 조선인학교는 일본 우익세력들의 탄압에 밀려 현재는 64개 교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단다. 보수도 열악하고 시설도 미비한 가운데서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통일의 그날을 꿈꾸며 살고 있었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인디플러그`를 검색하면 영화를 다운받아 볼 수 있으니, 꼭 감상해 보시기를 권한다.
다음 날 나는 다시 탈촌을 찾았다. 거창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전통예술공연단 `타혼(打魂)`의 박력 넘치고 혼을 쏙 빼놓는 난타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북채와 징채, 꽹가리채, 장구채가 파도가 되어 춤추는 `두드림`은 관객들의 마음을 그네 타게 만들어 하늘로 땅으로 오르고 꺼지는 `울림`으로 되돌아왔다. 이 날도 전날 못지않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일소일소(一笑一少)란 말이 있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는 뜻이다. 마음이 늙은 사람을 우리는 노인(老人)이라 부른다. 몸은 연로했어도 마음은 파릇파릇한 청춘인 어르신이 우리 남해에 많다는 것을 네 차례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느꼈다.
예술 행사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문 현실이 우리 남해의 현주소다. 그러나 가문 밭도 눈여겨 살펴보면 제법 실한 콩들도 많다. 무더위와 폭우를 에어컨이나 우산만으로 가리지 말고 예술 공연장을 찾아 웃음과 설렘으로 씻어낸다면, 이 짜증나는 여름도 신바람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다음호부터 임종욱 작가의 신작 소설 <던져진 것이 돌만은 아니니>를 연재합니다.

그동안 남해의 예술단체를 찾아 소개한 임종욱 작가의 글이 2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8월 8일자 신문부터 임종욱 작가의 신작 소설 <던져진 것이 돌만은 아니니>의 연재를 시작한다. 원고지 500여매 분량의 소설은 매주 게재되어 연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선소를 중심으로 한 남해 일대이고, 1811년을 전후한 시대에 남해로 전가사변(全家徙邊)의 형을 받아 유배를 온 한 가족의 애환을 다룬다. 남해의 다양한 고적들과 전설, 풍물패 `화전매구`와 `집들이굿놀음`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맛좋은 양념으로 버무려진 소설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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