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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치리에서 나온 백제의 은화관식, 주인공은?보물섬 사람들의 기억, 박물과 기록으로 만나다 5 - 여창현 연구사
남해타임즈 | 승인2019.08.13 09:34|(658호)
여  창  현
남해군 관광진흥담당관실
학예연구사

백제의 은화관식이 출토된 남치리 1호분 일대는 남쪽을 제외한 전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무덤이 축조된 구릉은 남치리 마을 방향으로 뻗어 내린 여러 능선 중 남쪽으로 가장 길게 뻗어 있어서 남치리로 들어오는 입구와 관음들을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인해 관음포 일대가 보이지 않으나 그 이전에는 해안선이 지금보다 내륙으로 더 들어왔을 것이므로 그 당시에는 해안선을 바로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치리 1호분에 대한 조사는 남해군에서 실시하는 고려대장경 판각지 흔적을 찾기 위한 학술발굴 조사로 실시되었다. 남치리 유적이 고려시대 무덤군으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고려대장경 판각시기 고현면 일대를 운영했던 고위 관리들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사결과 놀랍게도, 석실(돌방무덤)은 백제 사비기에 축조되었고 주인공은 은화관식과 청동제 허리띠를 두른 의복을 착장한 인물이었음이 밝혀졌다.

남치리 1호분 출토 은화관식과 허리띠 장식
남치리 1호분 석실묘(돌방무덤) 전경

사비기의 은화관식 겨우 12점
은화관식은 주인공의 머리 부분에서 관모테와 함께 출토되었다. 전체길이 15.3㎝ 정도 되고 줄기의 끝에 1개, 양쪽에 각 2개씩 꽃봉오리 장식을 달았다. 꽃봉오리의 끝은 화염처럼 길게 뻗은 형태이고 꽃받침은 둥글게 말았다. 줄기에서 꽃봉오리를 연결하는 가지는 사선방향으로 긴 `S`자를 그리고 봉오리는 바로 선 형태이다.
은화관식은 백제 사비기 6품 나솔 이상의 고위 관리가 착장할 수 있는 관모장식으로 알려져 있다. 근거는 당나라 때 편찬된 룗주서(周書)룘의 백제에 대한 기록 중 "六品已上 冠帽銀華"이라는 기록에 의한 것이다. 남치리 석실 조사 전까지 사비기의 은화관식은 모두 12점이다.
대부분이 사비기의 도성인 부여지역에서 출토되었으며 나주와 남원 등의 지방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경남지역의 경우 남치리 1호분 출토품이 유일하다. 남치리 출토품과 형태적인 면에서 가장 유사한 것은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품이며 시기는 7세기 전반 정도로 볼 수 있다.

백제관료, 왜 여기에 잠들었나?
그렇다면 은화관식을 착장할 수 있는 품계인 나솔 관인이 왜 남해에 묻혔을까? 지금까지 남해는 삼국시대에는 소가야의 영역으로, 가야 멸망 이후에는 신라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남해군의 삼국시대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충분하지 않지만, 남해를 포함한 고성과 통영, 사천과 진주 등 경남 남해안 지역을 소가야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소가야 멸망 이후 신라의 앞 바다에 있는 남해도에서 백제 관료를 상징하는 은화관식과 허리띠 장식품이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백제와 신라의 영역에 대한 역사지리적 인식을 깨는 발견임에 분명하다.
남해군에 백제 관료의 무덤이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남해군이라는 지리적 위치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해는 고대 해양항로 선상에 위치하는 섬지역이다. 창선과 사천 사이의 작은 섬 늑도는 삼한시대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해상 교역로의 중요 기항지였음이 드러났다. 남해군 역시 이 해상항로상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는데 백제에서 왜국으로 배를 타고 가려면 남해를 거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남해대교가 설치된 노량해협 일대는 섬진강 하구와 인접해 있어 섬진강을 통해 백제 내륙지역으로도 진입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백제는 정책적으로 남해의 이러한 지리적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백제 성왕은 사비천도 후 금강을 매개로 대외 교역을 활발히 전개하여 대외 교역 뿐 아니라 왜와의 문화교류를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대외 정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남해안의 장악 혹은 영향력 행사는 필수적 조건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치리 1호분이 축조된 고현면 일대에는 대국산성, 성산토성 등의 삼국시대 산성유적과 무덤군, 취락지 등이 분포하고 있다. 남치리 유적-대국산성-성산토성의 배치관계를 통해 고현면의 전략적 위치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대국산성과 성산토성의 조망적 위치로 보면 방어면은 동쪽의 강진만이 되는데 이는 백제의 영역이 광양만이 있는 서쪽에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해군의 지리적 위치와 백제 사비기의 정치적 상황 등을 통해 볼 때 남해군 고현면에 대한 백제의 진출은 충분이 예견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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