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면 좋아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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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면 좋아지는 삶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8.13 11:52
  • 호수 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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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의 숨비소리

모처럼 새벽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이른 잠을 깨고 새로 지은 집 베란다에 나서니 부끄러운 듯 살짝 속살을 내민 강진만은 원예시험장 울창한 숲을 휘감고 아직도 졸고 있었다.
우리보다 높은 데 집을 지은 이웃이 매끈하게 가지를 쳐낸 키 높은 소나무 몇 그루가 붉게 물들이는 새벽여명을 머리에 이고 내게로 다가온다. 해질 무렵 이국의 어느 해변에서 바라다본 야자수 너머 석양인지 분간이 가질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내가 어디서 살고 있었는지, 또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볼 겨를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유난히도 사람으로만 존재감을 느끼고 사람으로 위로받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때론 배신감에 사람을 증오하기도 하며 왜 그리 사람에게만 목을 매고 살아가고 있었는지 날이 밝아올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투영되며 나와 마주선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동안 누렸던 삶의 실체들이 스며드는 아침햇살에 더욱 또렷해지고 빛으로 반짝이며 되살아나는 풍경들의 경이로움 앞에 비틀거리며 남루해져 간다. 어쩌다 한번쯤은 느꼈을 법도 하지만 그 새벽 문득 어깨를 짓누르는 무언가의 무게는 확연히 다른 의미로 나를 휩싸고 들었다. 육십년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느껴보는 나와 또 다른 나와의 교감이었다.  
사실 그동안 여러 번 변화의 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그때마다 나를 옭아매던 인간의 굴레에 굴복해 그 고뇌의 실체가 무언지 굳이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순간 아!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여태껏 나를 괴롭히던 심연의 응어리는 바로 탐욕이었다. 내게 필요한 만큼의 소유란 게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어떻게 보면 탐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셈이다. 
사실 탐욕만큼이나 단정하여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것도 없는 듯하다. 우리가 흔히 도덕적 비판의 기준으로 자주 인용하는 탐욕스러운 사람에 대한 기준을 필요이상의 돈이나 물질, 권력 따위를 추구하는 것이라 하지만 필요의 기준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닥치면 참으로 난감해진다. 특히 물질만능의 시대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기독교와 같이 물질의 소유량을 계량하지 않고 성경에서 언급하는 하나님의 가치보다 물질을 더 우위에 두는 삶의 태도를 탐욕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다면 믿는 자와 불신자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불행히도 불신자다. 그렇다면 영원히 탐욕의 족쇄에 묶여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내게 필요한 만큼의 권력과 금력과 물질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스스로의 몫이다.
비밀도 간직하는 순간 스스로가 그 비밀의 포로가 된다고 했다. 필요한 것을 정하는 것 자체가 채우려는 또 다른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나도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한 때 물질적인 모든 것을 잃었었고, 건강도 잃었었다. 잃고 나도 경험이란 과한 선물이 또 채워졌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끊임없이 채워지기만 하는 삶의 무게를 견뎌내기가 쉽지 않은 나이가 된 것 같다. 차라리 내게 필요한 것을 애써 또 찾으려 하는 것보다 꼭 필요 없는 것들을 버려가는 편이 더 쉬운 방법 같다.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내가 아는 권력의 힘으로 나를 과시하고자 했던 우둔함이 정작 나를 잊게 만들었던 것들, 남보다 더 많이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열등의식이 만들어낸 상대적 금력들, 다른 이의 귀중한 경험과 소신을 무시하고 내가 더 잘났다고 생각했던 오만들, 졸렬한 사고에 갇혀 나만 옳다고 여겼던 수많은 편견들, 같이 어우러져야 하는 공동체의 나눔에 대해 그리도 인색했던 비정함들 같은 것들이 우루루 몰려온다.
버려야 할 것들이 참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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