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읍성, 자연발생 아닌 주민편의 위해 축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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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읍성, 자연발생 아닌 주민편의 위해 축조돼
  • 전병권 기자
  • 승인 2019.08.19 10:22
  • 호수 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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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읍성 이야기 ② 선소항, 읍성 위치선정에 중요 역할 기여

 <지난 호에 이어>
성문과 옹성
 문헌과 고지도에서 성문은 남북(2, 3곳)으로 기록돼 있고, 옹성(甕城: 성문을 공격하거나 부수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은 3기, 18기로 기록돼 있다. 옹성이 18기까지 표기된 이유는 옹성과 치(雉: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찰하고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를 합한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성문은 남과 북 두 곳에 둔 것으로 기록돼 있고 도로를 남북으로 개설해 남쪽에 주출구(남문)를 뒀다. 지금은 도시개발로 인해 남문과 북문을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지적원도와 남해군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문은 지적원도상에서 북변리 90번지와 남변리 341번지 사이지만, 옹성이 남·북문처럼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세기 초에 제작된 남해고지도에서도 남·북문과 옹성뿐만 아니라 동문에도 옹성을 묘사하고 있고 문종실록에서도 옹성을 3기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동문도 옹성이 있었으나 1915년 지적원도 측량 이전에 멸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문은 지적원도에서 서변리 28번지와 34번지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나 문헌이나 남해고지도, 지적원도 등에서 옹성이 확인되지 않아 원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제기되고 있다.
 북문은 북변리 22번지 일대이며, 남문은 서변리 64번지 일대이다. 옹성도 남북문에서만 확인되고 그 형식은 모두 반원형 편문식이며 개구부가 전부 동쪽을 향해 개방돼 있다.
 성문의 형식과 규모는 남해고지도에서만 확인된다. 읍성 정문인 남문은 정면 3칸의 중층문루, 나머지 성문은 단칸 중층문루로 묘사했다. 남북문은 팔작지붕과 동서문은 맞배집 혹은 우진각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성문에 대한 기록은 없기 때문에 성문의 명칭이나 규모 등은 확인 할 수 없어, 암문(暗門: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내는 작은 성문)이나 수구문의 기록도 찾을 수 없다.

아천문화관에 소장중인 1915년에 제작된 남해고지도. 지도를 제작할 당시 서문이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독자들이 보기 편하게 북문이 북쪽으로 오게 방향을 바꿔 보도하니 오해없길 바란다.


 치는 문종실록에 적대(敵臺) 13기로 기록돼 있으며 지적원도에서 12기는 확인되나 1기는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읍성의 동남쪽 우각부와 동문 사이에 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곳에 1~2기 정도의 치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읍성의 경우, 체성이 꺾이는 우각부에 치나 포루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적원도를 볼 때 남해읍성 네 우각부에는 치가 시설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치의 규모는 체성에 약 8.3m 정도 돌출됐고 폭은 교란으로 인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소 7.6m 이상으로 추정된다.

여장
 여장(女墻: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으로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구조물)은 문종실록에서 높이가 3척, 553기로 기록돼 있다. 남해읍성을 그린 모든 고지도에는 여장이 그려져 있다.
 
해자
 해자(垓子/垓字: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는 문종실록에서만 해도 3037척으로 기록돼 있고, 남해고지도에서도 북동쪽에서만 묘사한 것을 볼 수 있다. 지적원도에서는 앞서 설명한 대로 체성의 동, 서, 북쪽에는 논(25번지 224번지)이 길과 평행하게 있는데 이를 해자로 추정할 수 있다. 반면 남쪽과 동쪽 남반부에는 지목이 대지와 밭으로 변해 정확한 추정은 불가능하다.
 지적원도에서 해자의 제원은 외곽둘레 1475m이고 중심에서 측정한 둘레는 1417m이며, 폭은 5~6m이다. 해자는 체성외곽에서 약 11~15m 정도 차이가 있고 치와는 접하기도 하고 벌어져 있는 곳도 있다.
 
남해읍성 특징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남해읍성은 다른 내륙읍성과는 다른 연해읍성이다. 그래서 고현산성에서 남해읍성으로 이전할 때 이는 중앙정부와 남해군 행정, 특히 해군력에서도 요충지로서 활용할 수 있는 항구의 위치가 중요했다. 그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선소항이었다. 선소항은 남해읍성에서 북동쪽으로 2km 지점에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남해읍성은 자연발생적인 도시에 건립된 읍성이 아니라 단구면의 평지에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평지성이다.
 이를 반영하듯 남해읍성을 계획할 때 한 변의 길이를 700척(포백척)인 정방형으로 계획하고 그에 맞춰 읍성의 공간과 시설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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