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邑城)의 성벽(城壁)에 호롱불이 스쳐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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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邑城)의 성벽(城壁)에 호롱불이 스쳐갈 때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8.23 14:58
  • 호수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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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3 │碧松 감충효
碧松 감충효시인·칼럼니스트
碧松 감충효시인·칼럼니스트

어느 날 새벽녘에 잠이 깨어 고향에서 날아온 신문을 본다.
`남해군 인구 5년 새 3,573명 줄었다`
평소 하루를 위한 5분의 명상이 이날따라 신문 1면의 머리기사 제목에 갇혀 진전이 없다. 왜인가? 고향의 인구가 줄어든다는데 왜 나의 마음은 우울해지고 위축되어지는 반응을 보이는가? 따지고 보면 아무의 탓도 아니다. 그저 자연현상인데 왜 신문에서는 대서특필하고 나는 그 머리기사에 이렇게 반응하는가?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2017년 연말 기준 남해군 인구는 4만4537명이고 2018년 8월말 현재는 4만4245명으로 4만 5000선대가 무너졌다고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일은 벌써 오래 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우리 고향만이 아니다. 농촌지역은 거의 다 그렇다. 지방자치단체는 줄어드는 인구를 막기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전출방지, 외부인구의 전입확대, 출산율 증대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떤 정책을 써서 출산율이나 귀농 귀촌 인구가 늘어났다는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 비법을 벤치마킹 하러 떠난다는 부산한 움직임을 자주 보고 듣는다.
필자는 이쯤에서 줄어드는 고향 인구에 대한 사념의 나래를 접을 수밖에 없다.
왜인가? 꼭 줄어드는 인구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나 또한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라 이렇게 줄어드는 인구에 한몫을 했지 않은가? 서울로 올라오지 않고 그냥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자식들 붙들고 살았다면 우리 부부 이하 아들, 딸, 손자와 며느리까지 8명은 고향인구를 보탰을 것이다. 하지만 고향을 떠난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 굳이 그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 원인을 누가 제공한 것도 아니고 강제한 것도 결코 아니다. 그냥 각자도생의 길을 갔을 뿐이다. 시대 따라 각자 가시밭길 삶의 길을 개척해간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룗나의 고향, 나의 삶룘이란 화두는 나에게서 항상 사념의 정수리 부분에 자리 잡아 모든 하위 개념의 사념들을 호령한다. 조상님의 혼백은 내가 고향을 떠날 때 고향 마을 동구 밖에서 나의 손을 잡아 힘을 넣어주셨고 나는 그 후광으로 이날토록 객지 생활에서 삶을 영위해 왔다. 건전한 신체를 주셨기에 서울에 와서도 고향의 남달모 회원들과 국내마라톤대회에 참가하였고 고향의 마늘 축제, 창선-삼천포 대교 개통 하프마라톤, 내산 편백림 산길달리기 등에 참가하여 건강한 다리로 고향의 풍광 좋은 곳을 향우님들과 마음껏 뛰어다녔다. 60대 중반에 들어와서는 좋아하는 산행도 높은 산꼭대기 까지 올라가는 것은 자제하였고 고향사람들과 함께 도성길 순례, 고궁탐방, 왕릉 순례를 마친바 있으며 비교적 순탄한 157km 서울 둘레길을 세 번 째 돌고 있으며 그 건각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국제 태극권/우슈/쿵후대회에 나가 맨손으로 하는 투로와 무기(검)를 소지하는 시합의 두 분야에 노년부 2관왕을 차지하였고 이 기사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아파트주민들의 요청으로 아파트 내 체육관에서 날마다 아침 1시간의 재능 기부도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을 나는 항상 고향에서 받아온 기력과 지력과 체력이 원천임을 하루라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문단의 활동 역시 풍광 좋은 고향에서 시적인 정서를 키워온 덕택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즉 룗나의 고향, 나의 삶룘이란 이 화두는 나뿐만 아니라 고향을 떠난 모든 분들이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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