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노량산성,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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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노량산성,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09.16 16:20
  • 호수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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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군 기록이야기 8 │ 여창현 학예연구사
여  창  현 남해군 관광진흥담당관실 학예연구사
여 창 현 남해군 관광진흥담당관실 학예연구사

퇴뫼식 석축의 노량산성
노량산성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산54번지에 위치하며, 남해군민에게 익숙한 산성산(158.3m)의 정상에 자리한다. 산성은 대부분 구간에서 성곽이 붕괴되고 인위적으로 멸실된 부분도 보인다. 2010년에 실시된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산성은 동서방향 약 68m, 남북방향 약 200m이며, 성곽 둘레는 약 484m의 퇴뫼식 석축 산성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남아 있는 성곽의 높이는 대부분 1~2m 정도이며 원래의 체성의 높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부 구간의 경우 자연 암반 위에 4m 이상의 높이로 축조가 확인된다.

남해 노량산성 위치도.

문헌에서의 노량(露梁)
룗조선왕조실록룘(선조 106권, 1598년)에서는 11월 27일에 `노량도`라는 지명과 1592년 `노량진`이라는 지명만 확인될 뿐 노량산성에 대한 정확한 축성기사 및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룗세종실록지리지룘를 비롯한 문헌사료의 검토에서는 룗남해현읍지룘에 `노량진 재현북37리 곤양접계진선1집`(露梁鎭 在縣北37里 昆陽接界津船1集)이라고 되어 있다. 룗남해현읍지룘는 1899년 광무3년 전국읍지편찬사업 때 만들어져서 룗조선왕조실록룘의 기록보다 약 300년 뒤에 나온 것이다. 노량진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1592년에 확인되고 있어 노량산성이 임진왜란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남해 노량산성 동쪽 성벽(品자형 줄눈쌓기 모습).

노량산성의 문화재적 가치
노량산성의 동벽 구간에는 최초에 성을 축조할 당시의 성벽으로 긴네모꼴의 할석을 사용하여 품(品)자형으로 줄눈쌓기한 성벽이 확인되며 높이는 4m에 이른다. 곳곳에 허튼층쌓기로 축조한 높이 1~2m의 성벽이 확인되는데, 초축 이후에 누대에 걸쳐 수축해 성을 재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문보다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축조된 서문지와 성 내부 평탄지에서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지도 확인되었다. 네모꼴의 할석을 사용하여 품(品)자형으로 줄눈쌓기한 성벽은 인근의 대국산성, 임진성뿐만 아니라 경남지역의 거창 거열산성, 함양 사근산성, 창녕 목마산성, 거제 둔덕기성 등 삼국시대 말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신라가 축조한 고대산성의 축조모습을 닮았다.

남해 노량산성 동쪽 성벽 조사 모습.

특히 노량산성은 육지에서 남해로 들어오는 초입지로서 동해안에서 남해안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노량해협의 길목에 위치해 수로를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다. 인근에는 조선시대 덕산역과 노량원이 위치하고, 정유재란 때는 노량해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노량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장기간 사용된 산성임과 동시에 군사적,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설치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아 대국산성, 임진성, 금오산성에 이어 네 번째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기 위한 문화재 지정 고시만 남겨두고 있다. 이제 `남해 노량산성`의 명성과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가장 큰 몫은 우리 군민의 관심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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