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와 어머니는 내 시의 원천, 언젠가 돌아올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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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와 어머니는 내 시의 원천, 언젠가 돌아올 곳이죠"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9.09.20 17:49
  • 호수 6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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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시인` 고두현 북콘서트, 남해시선집 출간 계획도

지난 5일 열린 북콘서트 `어머니와 시와 남해`에서 고두현 시인은 가수 김현성, 레밴드와 함께 어머니와 남해를 향한 그리움을 깊고 풍부한 감성으로 노래했다. 남해가 고향인 시인은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유배시첩-남해 가는 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또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을 지내고 있다. 시집 「달의 뒷면을 보다」,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비롯해 시산문집 시 읽는 CEO,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 등을 펴내기도 했다. 이번 북콘서트를 위해 고향 남해를 다시 찾은 고두현 시인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남해가 고향이다. 자주 오시는지 = 정포리 우물마을이 우리 고씨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재산을 정리해서 뜻을 품고 일제 강점기에 북만주로 갔으나 학교도 못 세우고 뜻도 펴지 못한 채 몸까지 상한 상태로 남해로 낙향했다. 나는 남해금산에서 성장하고 포철공고를 다녔다. 고등학교에 갈 형편이 아니었는데 기적적으로 공짜 학교가 생겼다. 기숙사도 공짜였고, 군대도 면제받고 의도치 않게 `특혜`를 누렸다. 2005년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펴내고, 제10회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남해문학기행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물미해안이 어딘지 궁금해한다. 문학기행을 하면 남해를 한 바퀴 다 돈다. 물미해안은 물론이고 독일마을, 다랭이마을, 금산, 상주해수욕장, 모교 상주중학교에도 가보고. 방해될까봐 알리지는 않았지만 작년에도 갔다.

등단작 `유배시첩-남해 가는 길`에 대해 = 상주중학교에 서포 김만중 동상이 있다.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 `유배시첩-남해 가는 길`이다. 그게 서포 김만중 이야기다. 바로 내 옆에 서포 김만중 선생이 유배를 와 말년 3년을 노도에서 지내면서 「사씨남정기」, 「구운몽」을 쓰고 돌아가셨다. 서포를 공부하다 보니 그의 작품을 읽게 되고 거기 빠져들다 보니 마치 내가 서포가 된 것처럼 동화됐다. 내가 여섯 살 때 엄마 손 잡고 노량 바다 건너서 배를 타고 건넌 기억이 있다. 서포 김만중의 심정이 되어 내가 만중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노량해협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이 어땠겠나. 그때가 윤삼월일 텐데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를 건너는데. 내 이제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낮에는 화전을 일구고 밤에는 구운몽을 엮으며 이러면서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이 시가 마침 신춘문예 당선작이 됐다.

「늦게 온 소포」와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 남해에서 태어난 게 나에겐 천혜의 복이다. 그해 작품을 조선일보에도 보냈는데 마지막 당선작과 겨룬 작품이 `늦게 온 소포`다. 서포는 뭍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가 외로울까봐 위로의 글을 쓰고 나는 객지로 일하러 나가서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 어머니는 객지의 아들을 위해 유자를 내복에 꼭꼭 싸서 소포로 보내고. 첫 시집 제목이 유배시첩보다는 「늦게 온 소포」가 마음에 끌려서 제목이 됐고, 두 번째 시집은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인데 사람들이 "거기가 어디냐,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김승옥의 `무진기행`처럼 만들어낸 지명 아니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내 고향 남해에 있다며 3년을 한 달에 한 번씩 버스를 빌려 문학여행을 왔더니 그곳이 많이 알려졌다. 기업은행 사원들 감성교육 코스로 내가 인솔해 오기도 했다. 물미해안을 함께 여행한 연인들은 반드시 사랑을 이룬다는 신화도 만들어지더라. 어릴 때는 비교대상이 없어 몰랐는데 외지로 나가니 남해가 너무 아름답고 이국적인 멋도 있다.

노도 문학의 섬이 새로 조성되고 있다 = 돈을 많이 들여 건물, 공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콘텐츠가 제일 중요하다. 내가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유배시첩 연작이 열 편 정도 된다. 노도의 서포 김만중이 그 시의 주인공이다. 400년 전의 서포와 수백 년 뒤의 후배 시인이 쓴 시를 시공을 넘나들며 음미하며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걸 위해 일부러 쓴 게 아니라 그때 이미 푹 젖어서 시 쓸 때의 감동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에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기회가 되면 그 열 편을 드릴까 하는 생각이 있다.

은퇴 후 남해에 올 생각은 없는지 = 10년 가까이는 아직 따로 할 일이 있다. 그래도 결국에는 고향이다. 서울에는 일과 사회적 역할 때문에 있는 거고. 남해는 나를 키워주고 품어준 고향, 자연이며 모성애의 원천이자 내 문학적 샘물의 발원지다. 이미 마음은 와 있다. 남해에 관한 시, 신춘문예 당선작부터 연작들도 있고 이제 시선집 엮는 일은 내가 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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