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베트남댁 지나 씨, 쌀국수와 반쎄오를 대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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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베트남댁 지나 씨, 쌀국수와 반쎄오를 대접하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9.09.27 10:58
  • 호수 6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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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상상놀이터 마을도서관 `사람책을 만나다` 두 번째, 베트남 이주여성 김지나 편 열려
베트남 가정식 차림의 저녁식사 후에 사람책 지나 씨와의 대화시간이 이어졌다.

 "쌀국수와 반쎄오. 제 고향 베트남에서 먹던 음식입니다. 여러분과 따뜻한 쌀국수 한 그릇, 반쎄오 한 접시 나누고 싶습니다."
 23일 저녁 7시, 상상놀이터 마을도서관 `사람책을 만나다` 두 번째 사람책 편이 열릴 시간이다. 부랴부랴 강연 장소인 상주면 마을커뮤니티공간 동동회관에 도착하니, 문밖에서부터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진동한다. 7시부터 시작한다던 사람책 강연은 온데간데없고 흡사 잔칫집 분위기다.
동동회관 주방은 이날의 사람책 지나 씨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가며 열심히 전병을 굽고 있고, 동네 이웃이자 이날의 보조 요리사들은 20인분이 넘는 쌀국수를 담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원래 신청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동동회관을 찾는 바람에 주최측도 지나 씨도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과연 오늘 사람책 진행이 가능할까.

지나 씨가 고향에서 먹던 맛 그대로의 쌀국수와 반쎄
오가 먹음직스럽다.

 일단 먹고 봐야겠다 싶어 이미 만석인 동동회관을 벗어나 옆집 상상놀이터에서 쌀국수 한 그릇과 반쎄오 전병을 나눠 먹었다. 담백하고 구수한 쌀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먹고 바삭하게 씹히는 반쎄오 상추쌈을 한입 크게 먹으니 재료부터 조리방법까지 고향 베트남 것만을 고집한다는 지나 씨가 유난스러운 게 아님을 알겠다. 가정식답게 그 맛이 담백하고 심심하고 자연스럽다. 지나 씨는 이 음식들을 만들고 먹으며 머나먼 고향 베트남 호치민의 하늘과 사람들과 거리를 떠올렸을 게다.
 이날의 사람책 김지나(33·상주) 씨는 베트남 호치민 출신으로 남해 남자와 결혼해서 남해로 온 지 13년 됐으며 슬하에 아들 하나 두고 있다. 베트남 이름은 찐이다. 지나 씨는 일단 잘 웃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할지 수줍어하다 이내 유쾌한 말투와 동작으로 좌중을 사로잡는다. 남해살이 13년차답게 구성진 사투리 섞인 한국말이 제법 유창하다. 그래도 매끄러운 소통을 위해 이날 보조요리사로 활약한 동네이웃 조영 씨가 진행을 돕기로 했다.
 "쌀국수 재료는 숙주나물, 돼지 앞다리 2킬로씩 넣고 등뼈로 우린 육수, 국수, 전구지(부추), 쪽파, 라임, 다진 고추, 냄새 잡는 생강. 끝", "반쎄오 재료는 베트남 밀가루 강황, 새우, 숙주, 돼지고기, 삶은 녹두를 넣고 소금간 해서 볶아 야채에 싸서 먹는다. 끝." 간단하지만 다 알아듣겠다.
 돼지등뼈를 삶아 육수를 우린 쌀국수는 베트남에 있는 언니가 곧잘 해주던 음식이라고. "간단해요. 시간이 좀 걸릴 뿐." 이 말에 하루 종일 준비한 동네 이웃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지나 씨는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지나 씨는 한국에 와서 늘 일을 했다. "스무 살 때 시집 와서 아들 하나 낳았어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어렸으니까. 아이 낳는 것도 겁이 났지요. 아기는 옆에서 자꾸 울고 아빠는 시끄럽다고 옆방으로 가버렸어요. 그때는 힘들었어요. 아이가 서너 살 되었을 때 배양장에 나갔어요."
 식당, 양식장, 펜션 청소 등 다 해봤다. 지나 씨는 여기에 공장이 있었으면 한다. 주기적으로 월급 받는 일이 있으니까. 사실은 오늘도 일이 없어서 사람책을 할 수 있었다고 지나 씨는 말한다. 그래도 지나 씨는 항상 재밌게 산다. 짜증도 안 내고 싸울 일도 없단다. 이건 동네 이웃들이 증언하는 바다. 왜냐고? 복잡한 걸 싫어해서란다. "사는 데 중요한 건 이해예요."
 고향에는 가끔 가느냐는 질문에 자주 안 간다고 말한다. 예전엔 그러지 못했지만 이제는 핸드폰으로 화상통화 하면 충분하단다.
 "여기 사니 한국말 알지, 애도 있지, 친구도 많아서 별로 안 보고 싶습니다. 여기가 이제 제2의 고향이에요."
 지나 씨는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으로 언어와 운전면허를 꼽았다. "언어가 필요해요. 제일 중요한 게 소통, 언어니까요. 그 다음 중요한 게 운전이에요. 어디라도 가려면." 지나 씨는 소통에 필요한 두 가지를 다 가져서인지 넉넉하고 유쾌하고 여유롭다.
 추석 쇤다고 스트레스 받은 며느리들을 위해 지나 씨가 해준 한마디. "베트남 남자들은 가정적이고 살림을 잘해요. 한국 남자들은 돈은 더 벌지만 집안일은 안 하지요. 옆에서 좀 같이 하면 좋겠어요. 안 도와줘도 고생한다고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면 좋겠어요."
 지나 씨는 아흔다섯 되신 상주 최고령 어르신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어머니 잘 모신다고 면사무소에서 효부상도 받았다. 동네 어르신들 칭찬도 자자하다. 가족 잘 건사하고 살림 잘 산다고. 지나 씨보다 18살 많은 남편은 지나 씨가 고생하는 걸 잘 안다. "제가 원하는 걸 다해주고 싶은데 가진 게 없어서 미안하대요. 하지만 노력하며 살자고 말해줘서 기운이 나요."
 유쾌한 베트남댁 지나 씨는 힘들고 팍팍하지만 가족과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어서 오늘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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