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어질 남해에서의 삶은 안단테 그라치오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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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어질 남해에서의 삶은 안단테 그라치오소로"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9.10.18 15:02
  • 호수 6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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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부터 한 달간 원예예술촌서 최옥숙 `여행스케치`전
작품 `노스탤지어` 앞에 선 최옥숙 작가.

"남해에 사람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작은 문화공간 만들고파"

지난 1일부터 원예예술촌 문화관 2층에서는 서양화가 최옥숙(62) 씨의 그림 전시회가 한 달을 예정하고 진행되고 있다. 이름하여 `여행스케치`전. 어쩐지 남해를 방문한 여행객들에게 뜻밖의 반가운 선물이 될 것 같은 제목이다. 이웃 독일마을에선 맥주축제가 한창이고 제1회 꽃길음악축제가 열리기 전날이던 4일, 기자는 그의 그림이 궁금해 최옥숙 작가를 만나러 원예예술촌을 찾았다.
최옥숙 작가는 기자에게 첫 그림부터 차분히 설명해줬다. "사람들은 보통 여행을 가면 유명하고 장엄한 성벽, 아름다운 건축물, 푸른 바다를 찾지만 저는 그 지역 사람들이 사는 대문 안을 기웃거리고 성벽의 뒷면을 찾고 햇빛이 반쯤만 비치는 오래된 골목을 찾곤 했어요."  
최 작가는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의 뒷골목 성벽 둘레를 걸으며 12월의 가을풍경을, 프랑스 보르도의 봄의 수국을 그리는가 하면 시골 국화, 시골집 담장을 넘는 장미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인천 영종도의 시골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대문 안을 기웃거린다.
이 전시장에도 대문이 있는 그림이 4점 있다. "첫 번째 대문을 그리는데 내가 `오가며 그 집앞을 지나노라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더군요." 그런 식으로 그는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의 소재를 찾아 화폭을 채운다. "집이 오래됐다고 안 예쁜 게 아니고 새로 지었다고 예쁜 게 아녜요. 꽃과 오래된 구조물이 있어요. 거기에 주인의 마음과 이야기가 나타나는데 나는 그걸 좇는 거죠."

`남해로 여행 창선 길가 집`은 남해의 하늘빛과 사라진 것들에 대
한 그리움을 일깨운다.

최 작가는 자기 그림의 특징으로 빛을 들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인상에 따라 그렸듯이 내 그림에도 항상 빛과 그림자가 같이 존재해요." 스페인의 오래된 골목에 빛이 떨어지고 올라가는 길이 이어진다. 어두컴컴한 옛 골목이지만 빛이 들어오면 골목에서 사람이 걸어나올 것만 같다. 전시장 중앙 크게 자리잡은 시골집 벽 아래 핀 맨드라미 그림은 제목이 `노스탤지어`다. 제목처럼 어쩐지 빛과 그늘진 문 앞 붉은 맨드라미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빛과 자연물과 오래된 구조물들이 어우러진 감성이 묻어나지요. 오래된 것,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것. 보이는 테크닉도 필요하지만 그 느낌을 담는 게 중요해요. 내 그림을 보고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고 여행 온 느낌을 받고 휴식처럼 느끼면 좋겠어요." 
최옥숙 작가는 고향이 삼동면 동천이다. 특이하게도 그의 전공은 미술이 아니라 음악이다. 그림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취미라고 할까. 아름다운 장미가 시골 담장을 넘듯이 전공도 아닌 미술이 어느새 취미라는 담장을 넘어버렸다. 
어린 시절 음악은 초등학교 선생님께 배우고 개척교회의 장로였던 아버지의 교회에서 반주를 한 게 다다. 남보다 늦게 도시로 나가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음악을 배웠다. 지금은 인천에서 학생들에게 피아노와 음악을 가르치지만 어린 시절 채우지 못한 음악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그래서인지 고향 남해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다.
"대중음악은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노출이 많고 잘 받아들여지지요. 남해에는 그랜드피아노가 구비된 클래식음악 공연장이 없더군요." 그는 이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남해에서 할 일은 없을까 생각하고 있다. 남해에 전시와 음악회를 할 수 있는 복합공간을 개인적으로라도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런 공간에서 학생들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그림 전시회도 열고 오페라 수업도 해보고 싶어요. 음악과 쉼이 있는 공간이죠. 사회·문화·역사 등 주제를 담은 어른들 모임도 가지면 좋겠지요." 아무리 시골 농어촌이지만 문화가 없으면 피폐해진다고 믿는 그다.
5년 전부터 내려올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도 미리 준비해놨지만 현실에서는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건축허가를 받은 토지에 도로가 나야 한단다. 그래서 일단 보류한 상태다. "그런데 이 모든 걸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해요. 나의 조건과 현실의 조건이 잘 맞아야 하지요." 또 최 작가는 뭘 하든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이 서로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한다. 그냥 내달리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그는 남해에서의 삶은 모차르트의 소나타 2악장 안단테 그라치오소(느리고 우아하게)처럼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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