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북쪽에서 들리는 소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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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북쪽에서 들리는 소식 1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0.21 12:06
  • 호수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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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종욱

남해에는 유난히 `봉(鳳)`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읍성의 남쪽 성곽을 훑으며 강진만으로 들어가는 하천의 이름이 봉천(鳳川), 봉황이 날아다니는 내란 뜻을 담았다. 읍성의 동문을 나와 선소로 넘어가는 어귀에 있는 봉강산(鳳降山)은 봉천에서 깨끗하게 몸을 씻은 봉황이 머물며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뫼라 해서 그렇게 불린다.
남해현 읍성 주변에는 봉황이 즐겨 먹는다는 죽실(竹實)이 자라는 죽산(竹山)도 있고, 봉황이 둥지를 튼다는 오동(梧桐)마을도 있다. 그렇게 보면 남해는 봉황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그 영험한 몸을 살찌우면서 몸을 눕힐 수 있는 차비가 두루 갖추어진 영지(靈地)라 할 수 있다.
봉강산 동편을 따라 구릉을 넘어가면 그곳에 아늑한 분지형의 땅이 나온다. 멀리 강진만 바다가 손바닥처럼 비치는 이곳은 농사를 지을 만한 논과 밭이 오순도순 모여 있다. 논밭으로 내려가기 직전 완만하게 비탈진 구릉이 펼쳐지는데, 그곳에 남해의 궁사(弓師)들과 군사(軍士)들이 모여 활 솜씨를 다져가는 활터가 있다.
이 활터의 이름은 금해정(錦海亭)이라 부르는데, 역사가 오래된 궁술 수련장이다. 언제부터 남해에 화살이 날리는 시성(矢聲)이 휘감아 돌았는지 아는 이가 없다. 그저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에. 고려 왕조 때 몽골의 전란을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이겨내고자 팔만대장경을 판각할 무렵이었을 것으로 내다본다.
물론 신라 때부터 남해는 중요한 요충지였으니, 활로 무장한 군사가 없었을 까닭은 없다. 그러나 대장경 판각이라는 국가의 대사를 무사히 회향(廻向)하기 위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군사력은 갖춰져야 했다. 바다를 건너 기습할 적군을 제어하는 데 몇 백 보 밖에서도 겨냥해 명중시키는 활은 적군의 접근을 아예 끊을 수 있는 무기였다.
그 무렵 훈련을 위해 세운 활터가 지금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남해에는 금해정 말고도 활터가 몇 군데 더 있지만, 유서 깊기로 이곳 활터를 따를 곳은 없었다.
오늘 금해정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화살이 비산하며 나르는 소리가 골짜기를 메우고 있는 참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훈련이 열리는 날인 탓이었다. 꽤 많은 군사들이 사대(射臺)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고, 평산포와 곡포, 상주포, 미조, 적량 등 수군(水軍)들이 주둔한 지역을 관할하는 만호(萬戶)와 첨사(僉使)들도 집결해 있었다.
이날이면 당연히 남해현령도 사습(射習)에 참여했다. 현령 권진태는 만호나 첨사에 비해 품계는 낮았다. 또 변방이고 수군의 진영(鎭營)이 곳곳에 벌여 있는 만큼 만호와 첨사의 지위는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을 지녔다.
하지만 그런 수군 지휘관들도 기를 펴지 못했다. 왕실까지 호령하는 권세가 김조순 대감의 뒷배를 달고 있는 권진태는 만만하게 볼 벼슬아치가 아니었다. 그가 올린 보고문에 담는 평가에 따라 좌천과 승급이 좌우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현령이고, 문관이라는 위세까지 더해진 권진태는 권력 서열의 측면에서도 남해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런 현령 권진태가 굳이 사습에 얼굴을 들이민 것은 일종의 권력 우위를 보여주려는 과시욕이거나 문무(文武)의 재능을 겸비했다는 칭송을 듣자는 처신이었다.
평소 입던 문관복을 벗어던지고 화려한 융복(戎服)을 입은 권진태의 모습은 당당했다. 무소뿔에 사슴가죽으로 테를 두른 각궁(角弓)에 화살을 잰 권진태가 암깍지를 써서 활의 시위를 당겼다. 소매가 걸리는 불편을 막고자 손목에 찬 습(拾, 팔찌)에까지도 근육의 완강한 힘이 전달되었다. 제법 무인의 테가 나는 품새였다.
사대에 서면 보통 한 차례에 다섯 발의 화살을 쏘았다. 이를 한 순(巡)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순이 아홉 번 돌면 활쏘기가 끝났다. 모시풀이나 삼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엮어 만드는 시위는 장력(張力)을 얻고자 팽팽하게 당겨져 몇 순 돌지 않아도 사수(射手)의 이마에선 땀이 흐르기 일쑤였다. 그러나 권진태는 중간에 한두 번 숨을 고르느라 쉬기는 했지만, 아홉 순에 이를 때까지 땀을 거의 흘리지 않았다.
마흔 아홉 발 가운데 열 발이 빚나갔다. 연습용이니 무명천을 겹쳐 만든 솔포(小布)를 씌운 과녁을 일정 거리에 두었고, 실전용 촉을 뺀 무딘 연습용 촉을 박은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생각보다 복잡한 공정을 거쳐 완성되기에 낭비할 수 없는 군수품이었다.
과녁에 그려진 짐승 그림에도 신분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과녁에 호랑이를 그리는 호후(虎侯)는 중국 황제만의 전유물이었다. 조선의 임금은 곰이 그려진 웅후(熊侯)를 써야 했고, 신하들은 그 아랫단계인 큰 사슴이 그려진 미후(   侯)를 쓸 수 있었다. 일반 군사들은 멧돼지가 그려진 시후(豕侯)를 썼다. 화살이 과녁에 적중하면 곁에 있던 관원이 북을 치거나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 빗맞으면 징이 울리거나 흰 깃발이 펄럭였다.
적중한 화살 수를 확인한 권진태가 달갑지만은 않은 미소를 지으며 활을 옆에 있던 조옹집에게 넘겼다. 조옹집이 아부가 가득 담긴 기름진 얼굴로 활을 받으며 칭송을 늘어놓았다.
"대감. 문관으로서 이 정도의 신기(神技)를 보이시다니 명궁(名弓)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저기 만호와 첨사의 얼굴 좀 보십시오. 소태 씹은 표정이지 않습니까?"
권진태가 심드렁한 얼굴로 침을 뱉으며 말했다.
"열 발이나 빗나갔는데, 무슨 명궁이더냐. 몰기(화살 다섯 대를 모두 맞추는 일)가 고작 세 번밖에 나오질 못했다. 어제 술만 과하지 않았으면 대여섯 번은 장담했을 텐데, 칭찬만 들을 일이 아니다."

조옹집이 활을 툭툭 치면서 맞장구를 쳤다.
"대감, 그러시다 당상관에 오르시지 못하고 통제영이나 북녘 땅에 나가 변방을 지키라고 하면 어쩌시려고요. 무관들 주눅 들게 하신 것만으로 만족하시지요. 술이 준비되었으니 목부터 축이시지요."
사대를 벗어나자 무관들이 엉거주춤 몸을 뒤로 물렸다. 말은 하례하는 투였지만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기녀가 따러주는 술잔에 노란 국화주가 춤을 추었다. 기녀의 불그스름하게 상기된 볼을 흘낏 보면서 권진태가 석 잔을 연달아 비웠다. 사대를 얼핏 보니 무관들은 뒤로 빠지고 하급 군관들이 먼저 열을 지어 사대에 올랐다. 풍향을 알리는 깃발이 흔들렸다.
"그만 가자꾸나.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 없는 무지렁이들의 무예까지 봐줄 틈이 있겠느냐?"
"말을 대령하겠습니다."
"아니다. 걸어가자. 술기운도 오르는데 가을바람을 맞으며 거둬낼까 싶구나."
군졸 몇이 현령의 말을 끌며 뒤를 따랐고, 조옹집이 연신 굽실거리며 현령의 옆구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봉강산 뒤쪽 길로 접어들려니 현민(縣民)들이 추수를 하느라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벼 포기를 서너 개씩 잡아 썩썩 베는 낫질 소리가 들려올 듯했다. 한눈에 봐도 풍년이었지만, 농부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대감께서 부임하시니 농사마저 풍년입니다. 현민들의 홍복(洪福)입지요."
조옹집이 잔망스럽게 말을 늘어놓자 권진태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던졌다.
"올해 환곡으로 수백 섬은 거둬들여야 할 텐데, 작황을 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구나."
"어찌 수백 섬만이겠습니까. 소인이 관아 구실아치들을 들들 볶아 천 섬까지는 채워보렵니다."
권진태가 논에서 눈을 거두며 목소리를 죽여 대답했다.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르구나. 성과는 늘리되 밖으로 소문이 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행여 가렴주구나 일삼는다는 투서라도 조정에 들어가면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 될 수도 있어. 조정의 고관대작들이란 작자는 뒤로는 온갖 호박씨를 다 까면서도 겉으로는 청렴한 군자연하려는 위인들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소인이 그만한 눈치도 없겠습니까. 결단코 밖으로 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권진태가 다시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았다.
"그래. 내가 잘 되면 네 놈인들 덕을 보지 않겠느냐. 내 승진해 올라가면 너는 반드시 데려갈 요량이니, 수고 좀 하거라."
"염려 붙들어 매시옵소서. 소인은 대감 일이라면 용궁에 가 별주부 간을 떼어 오라 하셔도 불사할 것입니다."
"그래? 참으로 든든한 말이구나. 허허허!"
한참 아부에 골몰하던 조옹집이 슬쩍 표정을 바꾸더니 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런데, 대감. 근자 도령님 거처는 좀 살펴보시는지요?"
권진태가 무심한 얼굴로 조옹집을 돌아보았다.
"문탁이가 왜? 어련히 학업에 열중할까봐. 내 그 아이 걱정은 안 한다."
조옹집이 뒤편 낌새를 살피더니 속삭였다.
"물론입죠. 다만 도령님 거처에서 시중드는 계집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나도 알지. 문탁이 원하기에 그래라 했다만, 왜 그 계집에게 문제라도 있는 게냐?"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다만 도령님도 혈기 방장한 나이고 계집도 물이 오를 때라 한 집에 둘만 있으면 사달이 나지 않을까 하는 공연한 걱정입지요."
권진태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졌다.
"사내가 계집을 품는 게 뭐 그리 허물이겠느냐만, 대사를 앞둔 사람이 색정에 탐닉하면 문제긴 하지. 네가 가끔 들러 계집아이를 잘 건사하도록 해라."
조옹집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밝아졌다.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그런데 대감, 소인이 이립(而立, 서른 살)도 훌쩍 넘긴 나인데, 아직 홀몸이지 않사옵니까? 그 계집을 제 안사람으로 삼아도 될 런지요? 아, 물론 속량(贖良)은 하겠습니다."
권진태가 조옹집을 잠시 뚫어져라 보더니 낄낄거리면서 대꾸했다.
"네 놈이 염불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었구나. 환곡 처리가 만족스러우면 내 허락하마. 쓸 데 없이 기방에 생돈을 뿌리느니 살집 좋은 계집 하나 들여 후리는 것도 사내의 지혜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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