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이사장 안병주)의 `사람책을 만나다` 세 번째 시간. 상주 주민들에겐 `맑음이 엄마`로 통하는 이숙자 씨가 이날의 사람책으로 나섰다.
숙자 씨는 상주면이 아닌 이동면 주민이지만 아들 맑음이를 상주초등학교로 통학시키며 자연스레 `반`상주 사람이 됐다.
상주 언니·동생들과 텃밭도 가꾸고 책모임도 하고 가끔은 한상 거하게 차려 지인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기도 한다. 그때 차린 밥상이 직접 장만한 나물 열몇 가지와 직접 말린 생선구이, 직접 담근 된장국 등 `하도 건강한 상차림`이라 상주면 사람들에게 제법 입소문이 났다.
급기야 세 번째 사람책으로 초대되어 상주사람들에게 건강밥상과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 숙자 씨. 정갈하면서도 넉넉하고 깐깐하면서도 여유로운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숙자 씨는 남해 토박이에 1남 6녀 중 막내다. 대학 가면서 진주로 나가 17년을 살다가 2013년 2월에 남해에 돌아왔다. 역시 남해가 고향인 남편과 함께 친정에서 어머니 삼시세끼를 해드리며 1년 6개월을 살았다.
"남해에서 들어와 처음 5년은 적응을 못했어요. 내가 크고 자란 곳이지만 처음엔 잘 이해가 안 되어 나가고 싶었죠" 그 사이 언니들도 한두 명 내려왔는데 아무리 가족이어도 그런 생활이 조금 버거웠단다. 그래서 다시 떠나려고 마음먹은 적도 있다. 그 5년 동안 마음을 다잡으려고 계속 뭔가를 배우러 다녔다. 처음엔 한식을 배우고 자격증도 땄다.
이후 실버놀이지도사, 웃음치료사, 꽃차 만들기, 하브루타 토론교육까지, 초등학교 수학 방과후교사를 하면서 틈틈이 배워둔 게 이 정도다. 내년엔 제빵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친정살이를 마치고 집짓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되니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단다.
"원래 개인적으로 누가 오는 걸 싫어하는 편이었죠. 집은 나와 내 가족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맑음이가 태어나고부터 조금 바뀌었어요. 전에는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고 말았는데 이제는 시간 날 때 집에 사람을 부르는 것도 괜찮아지더군요." 깔끔하고 까칠한 도시녀가 한층 넉넉하고 푸근한 남해 `아지매`로 변모하는 과정이다.
이날 숙자 씨는 사람들에게 콩잎·깻잎·고춧잎·미나리·마늘종·머위·시금치·취나물·초석장까지 총 9종의 장아찌와 직접 말린 도다리 오븐구이, 동치미, 묵은지, 시래기된장국, 취나물, 고사리 볶음 등 직접 만든 나물 반찬과 디저트로 감말랭이와 고구마 말랭이를 대접했다. 비트와 청귤로 만든 물과 작두콩, 팬지꽃, 맨드라미, 비파잎차로 만든 꽃음료와 꽃차도 일품이었다. 반찬이 어찌나 많은지 밥 한 공기로는 다 맛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 저장용 장아찌들은 왜 이렇게 많이 만드는지 궁금했다. 숙자 씨는 시어머니와 동네 어른들이 주신 것, 텃밭에서 기른 것으로 만드는데 시골 어른들이 넉넉하고 인심이 후하다 보니 한번 주실 때 너무 많이 주시더란다.
"일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들이기도 하고 양이 많다 보니 버릴 수 없어 장아찌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농사짓고 키우는 마음, 다듬어 주는 정성을 알거든요. 그래서 주시면 사양 않고 다 고맙게 받아요."
남해의 환경과 아이 키우는 일이 그를 이렇게 변모시킨 것일까. 아니 도시를 벗어나 원래의 남해사람 모습을 되찾은 것일 게다. 진짜 할 일이 많겠다는 사람들의 말에 숙자 씨는 조용히 웃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해요. 짬짬이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