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배우러 오는 길은 멀지만 늘 오고픈 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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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우러 오는 길은 멀지만 늘 오고픈 꿈길"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9.11.07 14:26
  • 호수 6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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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세 김춘선 시인, 올해 두 권의 공동 창작시집 출간
올해 두 권의 공동 창작시집을 낸 김춘선 시인.
올해 두 권의 공동 창작시집을 낸 김춘선 시인.

 79세의 김춘선(서면 중현) 어르신은 시를 쓴다. 남해도서관 시창작반이 올해 펴낸 공동창작시집 「남해에는 천 개의 봄이 핀다」와 「모든 꽃은 남해에서 온다」에 총 7편의 시를 수록한 어엿한 시인이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기막히고 아프고 원망스런 일들이 한가득이다. 스물한 살 시집가던 날 밤늦도록 안 오는 새신랑을 기다리던 일, 가난한 살림살이에 천신만고로 2남2녀를 키워낸 일, 마흔다섯 살에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30년 가까이 병상을 지켜야 했던 일들이 인생 굽이굽이마다 자리해 있다. 어릴 적 동무들과 놀다가 부러진 팔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지금도 아프다.
 "사랑이라는 말은 내게 딴 나라 말이나 매한가지였지요." 허나 인생이 어디 아프고 서럽기만 한 것이던가. 어려운 살림에도 자식들은 잘 커줘 김 시인의 자부심이 됐다. 남해서 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늙어온 김 시인의 인생 희로애락이 열 권의 노트에 빼곡히 담겨 있다. 그는 지금 이 노트에 담긴 사연들을 한 편 한 편 시로 길어올리고 있다.

동생 김태두 씨가 고이 간직해온 누이 김춘선 씨의 소녀시절 사진. 맨 오른쪽 소녀가 김춘선 씨다.
동생 김태두 씨가 고이 간직해온 누이 김춘선 씨의 소녀시절 사진. 맨 오른쪽 소녀가 김춘선 씨다.

 김춘선 시인은 시집 출판기념회를 하는 이날도 `시간버스`(한 시간마다 오는 버스를 할머니는 이렇게 표현했다)를 타고 남해도서관을 찾았다. 시 수업을 하러 도서관 오는 길은 "멀지만 늘 오고 싶은 꿈길"이었다.
 "나는 삶을 시로 적어요. 이웃과의 다툼은 `용서`라는 시가 되고, 대추나무, 감나무도 시가 돼요. 그중에 제일 맘에 드는 시는 `등대`예요." 김 시인은 시낭송회에서도 자작시 `등대`를 낭송했다. "나도 나의 불 밝혀/이 밤 같은 세상에/등대가 되고 싶다"는 79세 시인의 소망은 읽는 이의 잠든 영혼을 일깨우는 듯하다.
 ※ 시 `등대` 전문은 남해시대 홈페이지에 싣는다.

 

등대

                                     김춘선

사시사철 바다에 홀로 서서
태풍이 몰아쳐도
때때로 모진 풍랑으로
가끔은 소낙비가 내려도

여전히 밤을 불 밝혀주는 것이
어머니를 닮았는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인가?

나도 나의 불 밝혀
이 밤 같은 세상에
등대이고 싶다
새벽이 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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