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짜는 장인, 정인엽 할매의 인생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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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짜는 장인, 정인엽 할매의 인생을 걷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1.08 11:18
  • 호수 6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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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반짝, 볕이 들었다 1

`삶 속에 반짝, 볕이 들었다` 지면은 특별한 일을 했거나 대단한 성과를 달성한 사람, 기관·단체장이 아닌 평범한 이웃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반짝 빛나는 순간이나 그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정인엽 할머니가 매일 한다는 그물 짜기.
정인엽 할머니가 매일 한다는 그물 짜기.

"아무 헐 일이 없으면 그물 만들지. 그물 만들다가 저녁밥 묵고 저녁 되면 테레비 보고…." 남해읍 선소리에 사는 정인엽(91) 할머니는 그물을 짜며 말했다. 정인엽 할머니는 선소리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아흔 살 평생 선소리를 지켜왔다. 그의 소일거리는 매일 그물을 짜는 일이다. 할머니는 그물을 엮어가며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젊어서는 못하는 일이 없었네. 베도 짜고 농사도 짓고 그랬네."
아홉 살이 되던 해, 바닷가를 한창 뛰어다녀야 할 소녀는 날마다 무릎의 통증을 호소했고 알 수 없는 통증에 수술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수술이 잘못된 걸까. 수술한 다리는 성장이 더뎠고 결국 소녀는 다리를 절게 됐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소녀는 학교에 갈 수도, 힘차게 뜀박질을 할 수도 없었다. 다리가 아파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손을 놀려 가난한 살림에 일손을 보탰다. 길쌈도 하고, 농사도 짓고 눈으로 본 것을 다 해낼 수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다리가 성치 못하니 땅도파고 비료도 줘야하는 농사일은 고역이었지만 소녀는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시집살이도 곤란코 없는 집에 살라쿤께 사는 게 너무나 일이 돼서 못 살긋대."
어느덧 소녀는 자라 혼기가 차자, 부모님은 그를 남해군 서면으로 시집보냈다. 그러나 결혼생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나고 말았다. 어려운 살림에 고된 시집살이 때문이었으리라. 죄스러운 마음은 그의 몫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별은 찾아왔다. 부모 형제가 하나 둘 세상을 뜨면서 정인엽 할머니는 혼자가 됐다. 성치 않은 몸으로 홀로 평생을 꾸려온 삶이 쉬울 리는 없었다.

그물에 엮어질 끈들.
그물에 엮어질 끈들.

늙은 아버지가 잔일 삼아 그물을 짜던 것을 형제, 자매들이 보고 배웠고 마주 앉아 그물과 세월을 함께 엮었던 그 자리에 지금은 정인엽 할머니 홀로 남아 있다.
할머니는 남은 삶, 그물을 엮으며 살아냈다. 그녀의 삶에 바다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할머니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할머니의 그물은 생활비가 되기도 하고 반찬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삶이되기도 했다. 할머니가 엮어내는 거미줄 같은 그물은 주로 조카사위에게 전해졌다. 선소에서 바닷일을 한다는 조카사위는 할머니의 그물로 또 다른 삶을 건져 올리고 있으리라.
"나(나이)가 많은께 암 것도 바라는 것도 없어. 인자 이런 것 안하고 쉬면 좋겠다 이거지."
그물을 엮으며 지난 세월을 풀어놓은 할머니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배운 도둑질이라, 조카사위가 어장을 하니까 계속해서 그물을 엮는다는 할머니. 나이가 들어 일하기 싫다고 말씀하셨지만 손을 놀리고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소일거리도 없다고 했다.
혼자 사는 적적함에 마음이 허해질 때면 마을회관도 가고 읍에 나가 병원도 다녀온다. 요즘은 잠이 오지 않아 힘들다는, 어딘가 아이다운, 응석이 묻어나오는 말을 덧붙였다.

에필로그
그때 그 시절, 소녀는 농사를 짓고, 길쌈으로 살림에 손을 보탰다. 어떤 해에는 6·25 전쟁을 겪기도 했고, 당시 비행기가 공습할 때면 절이나 숲속으로 몸을 숨기기도 했다. 소녀들이 학교를 가는 일은 흔치 않았던 터라 속상한 것도 몰랐다지만 `있는 집`에 태어났더라면 혹은 요즘 같은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학교를 다녔을 것이라는 정인엽 할머니는 낡고 오래된 세월을 들춰내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혹시나 신문에 글을 내는 것이 돈이 드는 건 아닌지도 재차 확인했다.
꽃이 피어 향기를 내고 탐스러운 과실을 맺는 동안 뿌리는 조용히, 깊고 어두운 땅 속에서 묵묵히 몸을 뻗어 내린다. 나무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땅을 단단히 움켜쥐고 양분을 빨아들여 또 다시 꽃을 피워낸다. 꽃이 피는 동안에도 뿌리는 몸을 뻗기 위해 애를 쓴다. 단지 그 뿐이다.
윤은별 시민기자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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