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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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철학하기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1.08 16:09
  • 호수 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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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주 │ 본지 칼럼니스트

올해 `남해상주 우리마을 인문학 강좌`(아래 우인강)도 막을 내렸다. 총 네 번의 강좌와 마지막 `함께 만드는 마을교육공동체`를 주제로 한 토크쇼까지. 매회 50명이 넘는 분들이 오셨고, 강의에 이어지는 질문 덕분에 마무리가 늦어지기 일쑤였다. 강사들의 열정과 청중들의 집중력이 어우러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마을에서 철학하기`라는 다소 뜬금없는 주제라 많이 오실까 걱정했지만, 말 그대로 기우였다. 다양한 마을과 공간에서 이미 `철학`을 하고 계신 분들이었고, 삶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분들이었다. 중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던진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현재의 문명을 `석유문명`으로 규정한다. 석유로 생산하고, 석유를 소비하고, 석유에 의해 사회가 유지되는 문명이다. 이미 석유 생산량은 정점을 지났고, 불안정한 유가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경제구조 속에 진입해 있다.
더 문제는 기후위기다. 현재의 사태는 한가로이 `기후변화`를 논할 때가 아니라 이미 `기후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비관적이다. 지난 유엔총회에서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각국의 세계 정상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당신들이 내 인생을 훔쳐갔다"고.
이 와중에도 미국은 물론 온실가스 배출 7위인 한국정부 역시 `세계 푸른 하늘의 날`을 제정하자는 뜬금없는 제안만 할 뿐,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매년 반복되는 살인적인 미세먼지와 재앙적 수준의 기후변화를 경험하고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태도는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거기서 우리의 책임은 과연 없는 걸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근대문명은 `석유`뿐만 아니라 `가부장제`가 한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부장제와 함께 군대문화까지 뒤섞여 일상적인 성차별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미투운동`이 본격화되고 나서야 여성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이 남성이 살고 있는 현실과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고 있다. 절박한 상황이지만 남혐, 여혐 논란으로 본질이 왜곡되어 버렸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농촌지역에서 페미니즘을 교육하고 실천하는 `문화기획달`의 이유진 활동가는 이번 우인강에서 "누가 누구를 혐오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성적 차이로 드러나는 차별적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대다수 여성들에겐 생존과 삶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김종철 발행인이나 유범상 교수 모두 문제 해결은 `정치`라고 말한다. 문제는 `어떤 정치여야 하는가`다. 현재와 같이 `불완전한` 선거로 귀결되는 정치 시스템은 다양한 공론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유범상 교수는 헌법 제1조를 돌아보자고 말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히틀러의 나치를 승인했던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모두 정당한가.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시대에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앞세운 정치는 불가능한가. 김종철 발행인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면서 정책적으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범상 교수는 `사회의 통`을 키우자고 하면서, 선별적 복지제도가 아닌 보편적 사회복지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제도와 사회 시스템의 변화는 더디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완주군 고산면에서 시도하는 `마을교육공동체`의 실험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고 있다. 김주영 완주미디어센터장은 이번 우인강에서 "마을과 행정, 학교와 마을이 만나 지속가능한 공동체 모델을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고산면에서의 실험이 남해군 상주면에서 펼쳐지는 `마을교육공동체`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소멸위험지역에서 살고 싶은 마을로 변화될 수 있다는 걸 일깨워 줬다.
이번 우인강을 통해 많은 질문이 우리에게 던져졌다. `우리는 잘 살고 있는가`에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까지. 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남해상주에서는 `마을교육공동체`를 화두로 끊임없이 배우고 성찰하며 나아갈 것이다. 두려워 할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다. 문명의 전환을 위해,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위해 함께 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비틀스 존 레논의 부인인 오노 요코는 이렇게 말했다. "혼자서 꾸는 꿈은 단지 꿈일 수 있으나,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함께 꿈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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