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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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하지 않겠습니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1.15 14:43
  • 호수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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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왕회장. 대한민국 1세대 대표 기업인 고(故) 정주영 회장의 별칭이다. 소학교 졸업 후 가출해 인천 부둣가에서 막노동하며 살다 쌀가게에 취직해 3년 후 가게를 물려받았다.
미군정 말기에는 건설회사를 시작했다. 6·25 전쟁 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방한 때 주한미군은 UN묘지의 녹지사업으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왕회장은 미 대통령이 비행기로 순찰할 것을 확인하고, 30여 대의 트럭으로 보리싹을 옮겨 심어 항공기에서 볼 때 녹지처럼 보는 기지를 발휘해 건설회사 경영자로도 성공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왕 회장에게 세계적인 조선소를 만들 것을 요구했고 그는 울산 미포만 해변 사진 한 장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설계도만으로 유럽을 돌며 차관과 선박 발주를 받아 조선소도 성공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는 88올림픽 유치에도 큰 공헌을 했다.
일등기업을 일군 후 정치인은 기업인을 이용만 하고 무시한다는 생각에 정계에 입문했고 통일국민당을 창당, 31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후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김영삼·김대중·정주영 3파전에 하루씩 번갈아가며 기자회견을 했는데 참관한 기자에게서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
기자들이 세 후보에게 가장 껄끄러운 질문을 하나씩 준비했는데 왕회장에게 많은 여자와의 염문에 대해 답해 달라 요구했더니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항간에 제가 많은 여자와의 염문설이 떠도는데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한 후 "그래도 여자들을 서운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호적에 올렸고 딸을 낳으면 호텔이나 백화점을 주었습니다"라고 답했다 한다.
인터뷰 다음 날 어떤 신문도 왕회장의 스캔들을 싣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수많은 명언과 업적 중 부인하지 않겠다는 그 말이 필자에게 최고의 명언으로 기억되는 건 자신의 잘못을 당당히 바라보고 인정하는 용기와 원만히 처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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