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위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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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위의 소년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1.18 17:49
  • 호수 6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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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소년의 아버지는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잃어 애정 결핍이 심했다. 게다가 이상주의자여서 직장생활을 일정하게 하지 못했고, 며칠 일하고 쉬기를 반복하며 술을 매일 마셔 가정은 주취폭력으로 파괴되어갔다.
소년의 어머니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집을 떠나 일하며 자식들을 키우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질 않았다. 3형제 중 맏이인 소년은 어머니의 소재지를 말하지 않는다며 아버지로부터 구타당하는 일이 늘어만 갔다.
중학교 겨울방학이었던 어느 날, 술을 마신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소년은 얇은 옷만 입은 채 도망을 쳤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다 어둠이 찾아오자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아침이면 아버지가 밖으로 나갈 거란 생각에 집 근처에서 버티기로 작심했다.
당시 소년의 집은 단층에 가운데 마당을 두고 사면으로 9세대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각각 방 하나에 부엌과 마루로 된 조그만 쪽방집이었다. 화장실 두 개를 같이 쓰고 조그만 빨래방 또한 9세대가 같이 사용했다.
추위에 밤이 깊어지자 소년은 어둠 속 빨래방에서 몸을 비비며 버티다 동이 틀 무렵 이웃들의 시선을 피해 옥상으로 자리를 옮겨 해뜨기만 기도하며 버텼다. 일초라도 늦게 해가 뜨면 얼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칠 때 옆집에 불이 켜지며 아주머니가 아들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 다정하게 느껴져 소년은 옥상에 엎드려 옆집을 훔쳐보았다. 조그만 주방에서 밥상을 가져와 이불속 아들을 깨우는데 그 집 아들이 "엄마 5분만 더" 하며 이불속에서 등을 돌리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소년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날 소년의 밤은 인생에 기억되는 긴 밤이었다.
배고픔과 추위, 어둠에 혼자인 무서움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미래에 대한 절망감은 짧은 인생을 수백 번도 더 정리할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나의 행동이 가족과 주변 이들에게 어떤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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