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 12년간 남해 머물며 대장경 조성 핵심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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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 12년간 남해 머물며 대장경 조성 핵심역할"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9.11.21 14:42
  • 호수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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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윤 향토사연구위원, `대장경 판각과 일연선사` 발표
일연의 문도(門徒)들이 대장경 590여 장 판각 참여

팔만대장경의 고향, 보물섬 남해 학술심포지엄이 지난 8일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 주최로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렸다. 본지는 지난호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과 최연주 동의대 교수가 한 주제 발표의 핵심 내용을 전달한 데 이어 이번호에는 △고려대장경 판각과 일연선사(김봉윤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분사대장도감의 고고조사 성과와 접근방법(최태선 중앙승가대 교수) 주제 발표의 주요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주>

김봉윤 향토사연구위원.
김봉윤 향토사연구위원.

 우리가 아는 고려팔만대장경은 재조대장경으로 현종 때 거란 침입에 대응해 제작한 초조대장경(1087년경 완성)이 몽골 침입으로 1232년 소실되자, 고려 고종과 최씨 무인정권이 불력으로 몽골을 물리치자는 취지로 추진한 대형국책사업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재조대장경의 조성 시기는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간이다.
 
대장경 판각과 일연의 역할
 1249년(고종36년) 대장경 조성사업의 핵심인물인 정안이 일연선사를 분사대장도감이 있는 남해로 초대한다. 일연은 44세부터 56세까지 12년 동안 대장경 판각 현장인 남해에 머물며, 판각된 경판의 감수, 인경과 제책, 대장경에 빠진 경전의 입장 선정과 보판작업을 수행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진주목부사 전광재가 분사남해대장도감의 행정책임자, 정안이 도감의 재정담당, 일연이 대장경 조성사업의 실무를 총괄했다고 볼 수 있다.

일연이 편찬한 룗중편조동오위룘의 일본 간행본. 제주 정방사 혜일 스님이 이를 입수해 보관하다가 이번 대장경 학술심포지엄에서 전시했다.
일연이 편찬한 룗중편조동오위룘의 일본 간행본. 제주 정방사 혜일 스님이 이를 입수해 보관하다가 이번 대장경 학술심포지엄에서 전시했다.

 하동 출신인 정안은 무인정권의 집권자 최이와 인척간으로 막대한 부를 가졌으며 고승들과 긴밀히 교류하면서 남해에 정림사와 강월암을 창건하고 대장경 판각작업을 주도했다.
 일연의 부도와 탑비인 경북 군위의 「인각사보각국사비문」에 보면 일연문도 중 12명이 판각에 참여해 590여장의 경판을 판각했음이 확인됐다. 동음이자의 각수명이지만 동일인으로 보이는 수까지 더하면 상당수의 문도가 대장경 조성사업에 참여했다. 일연문도가 조직적으로 대장경 조성사업에 참여했음이 밝혀짐으로써 남해 정림사 주석, 「대장수지록」 편찬, 대장낙성회 주관 등 일연선사의 행적에 대한 의문도 함께 풀리고 있다.
 
차산-선소마을이 일연 주석지
 일연이 편찬한 「중편조동오위」 서문의 "지난 병진년(1256) 여름에 윤산 길상암에 머물면서"라는 문구가 길상암의 위치를 윤산이라고 밝히고 있다. 옛 문헌과 고지도를 보면 남해의 행정명칭은 전야산, 해양, 전산으로 별칭은 전산, 윤산, 화전으로 불려온 것을 알 수 있다.
 1877년에 간행된 「남해읍지」 고적란의 "동정마애비는 현의 동쪽 5리 윤산남대 아래에 있으며, 천남대는 윤산 위에 있다"라는 문구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장수의 전공을 새긴 장량상동정마애비와 일본 왜성인 천남대가 있는 남해읍 선소마을 뒷산을 윤산으로 지칭하고 있어, 길상암은 남해읍 차산-선소마을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연은 길상암에 주석하며 당호를 봉소헌이라 지었다. 「중편조동오위」 서문에 "중통원년(1260) 12월 8일 봉소헌에서 회연이 서문을 쓰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회연은 일연으로 개명하기 전의 이름이다. 봉소헌은 `봉황이 미소짓는 집`이라는 의미로 봉황지명은 남해읍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다. 봉영산 일대의 지명이 차산이며 길상암이 있었다는 윤산 지역과 일치해 남해읍 차산-선소마을 일대에 일연선사가 「중편조동오위」를 편찬한 길상암(봉소헌)이 자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불교 조동종의 사상서 「중편조동오위」는 일연이 1256년 남해 길상암에서 썼지만 원본은 실전됐고, 1680년(숙종6년) 재간본을 서지학자 민영규가 1984년 일본 교토대학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제주도 정방사 혜일스님은 1988년 일본 유학시절에 우연히 이 책을 구입했는데, 도쿄의 고서점 주인이 한국 스님의 책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혜일스님은 「중편조동오위」를 제주도로 가져왔고, 현재 이 책을 관리하고 있는 제주 반야사 수상스님은 일연선사의 저술로 국내 유일본인 이 책을 문화재로 지정받으려 노력했으나 외국 출간본이라 지정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요약 정리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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