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끝에서, 하늘의 시작에서 만난 그대 노무현 가을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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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끝에서, 하늘의 시작에서 만난 그대 노무현 가을음악회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2.12 14:41
  • 호수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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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재단 가을음악회 참관기

  갈까 말까 망설였었다. 이 땅 끝 섬에 노무현재단 남해지회가 꾸려지고 가지는 첫 음악회였다. 저녁 7시 시작인데다 장소는 탈공연예술촌이었다. 날씨가 쌀쌀한 거야 옷을 껴입으면 그만이지만, 끝나면 9시 어름일 테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끊길 참이었다. 그 번거로움 때문에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고, 나는 읍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 빠질 수 없었다. 남해에서 활동하는 예인(藝人)들의 음악과 토크쇼, 그리고 임동창의 피아노 음률과 타타랑 공연.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연극을 볼 기대감에 마음이 들떴다. 더욱이 비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의 열기가 하나로 불타오르는 현장에 어울리고 싶었다.

겨울이 코앞에 닥친 늦가을. 탈촌 앞에서 택시를 내린 나는 내심 놀랐다.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었고, 계속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노무현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외롭지 않았다. 정치적 분위기가 현 정권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지 않은 여기에도 올바른 길을 가고자 했던 한 사람의 메아리는 짙게 그리고 따뜻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문득 그의 죽음 소식을 처음 접했던 때가 떠올랐다. 지하에 있던 공부방을 나와 길을 걷는데 얼핏 상가의 텔레비전에서 봉하 마을 현장을 중계하는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들어야 했던 그 믿기지 않는 소식. 갑자기 세상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이는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솔직히 나는 그가 재임할 때 그에 대해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그의 자유로움이 내게는 너무 생소해서 거부감을 가졌다. 그가 쓰던 언어 역시 그리 정제된 것은 아니었기에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의한 권력이 온갖 모해를 지펴 올려 전직 대통령을 죽음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일은 용서할 수 없었다. 이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추모곡,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부르곤 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노무현이 내게는 그랬다.

사람을 떠나보낼 때 영결의 자리는 슬픔의 아수라장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기꺼워하는 모꼬지가 되어야 한다고 장자(莊子)는 말했다. 생명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 우리는 떠나는 이의 귀향(歸鄕)을 반가워하며 노래로 부활의 꽃길을 꾸미자고 권했다. 두 시간 넘게 불타오른 음악회는 바로 그런 기쁨으로 넘쳐나는 축제였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있기에 그는 죽지 않고 영원히 활활 타오르는 혼불로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자리에서 임동창은 악(惡)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그 특유의 너스레로 우리들을 일깨워주었다. 선(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위해 우리는 악조차도 우리를 담금질하는 힘으로 승화시켜야 했다.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함께 있기에 우리의 생명이 약동하고 전진하듯이, 적을 미워하지 말고 동행하는 벗으로 여기자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적에 대한 미움이 스르르 녹아버렸다.

떠나보낸 뒤 그립지 않은 것이 과연 있을까? 만남이 있으면 떠남이 있고, 떠난 이는 결국 다시 돌아올 것을 믿기에, 이날 우리들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을 수 있었다. 우주의 무한한 시간에 비하면 우리의 생명은 덧없이 짧지만, 누군가를 누군가가 가슴에 품고 상기한다면 그 사람은 우주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존재할 것이다.

노무현이 우리를 버리고 잠시 떠났기에 우리는 `발병`이 났다. 그리고 "가시는 듯 도셔 오쇼셔"라며 님의 귀환(歸還)을, 여기 생명의 고향 `사람 사는 세상`에서, 고려시대의 민중들처럼 안타깝지만 유쾌하게, 우리는 춤추고 노래했다.

귀가하기 위해 서성이는 길가,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 발 밑을 비추는 밝은 불빛은 `가신 님`의 항존(恒存)을 약속하는 `복된 소리`였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결코 보내지 않은 많은 이들이 뿌려주는 풍류가락이었다. 그런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행복한 것이 아닐까? 다시는 망설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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