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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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은 떨어진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19.12.26 11:44
  • 호수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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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해방 후 일어난 전쟁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여유마저 가져가 버렸다. 폐허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 소년은 어려운 가정환경과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산사로 향했고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동자승 생활은 어려웠지만 속세의 굴레를 벗어나 노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스님의 길을 걷게 됐다.


어린 스님의 일과는 새벽 수행을 시작으로 마당을 쓸고 공양을 준비하고 공양물과 생활용품을 지게에 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그 중에 틈틈이 공부도 했다. 노스님의 가르침과 옛이야기는 큰 즐거움이지만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과 사찰 일은 매일 늘어 나는 것 같아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중 매일 마당을 청소하는 일은 따분했고 잎이 떨어지는 늦가을부터 초겨울은 더욱 힘들었다. 자고나면 바람에 지는 나뭇잎이 싫었고 특히 바람이 거칠게 분 다음 날은 많아진 낙엽에 당황하곤 했다. 떨어진 낙엽을 쓸며 스님은 어느 날부터 바람을 원망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며 배움이 커질 때 스님은 미운 바람마저 자연의 흐름이라 이해했고 마당 쓰는 일 또한 담담히 받아들였다. 다시 찾아온 겨울, 바람 한 점 없이 따스한 날 마당을 쓰는 스님 옷깃을 나뭇잎이 스치며 떨어질 때 스님은 깜짝 놀랐다. 항상 바람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생각했는데 봄에 난 연약한 새잎이 뜨거운 여름 큰 잎사귀로 성장해 나무에 양분을 전하고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스스로 말라 떨어지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바람이 없어도 나뭇잎은 수명이 다하면 떨어지는 것, 단지 바람이 불면 조금 더 빨리 떨어질 뿐 어차피 떨어질 나뭇잎의 양은 정해진 것, 변하는 것은 시간이 조금 바뀔 뿐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스님은 어느새 큰 스님으로 거듭나 많은 이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우리의 많은 원망의 대상이 혹시 불어오는 바람이지는 않을까? 되돌아보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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