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져진 것이 돌만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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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져진 것이 돌만은 아니니
  • 남해타임즈
  • 승인 2020.01.09 15:22
  • 호수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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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구름에 가려진 땅1

 관아 안에 있는 옥사(獄舍)로 들어서는 조옹집의 발길은 무거웠다. 지금처럼 감옥 안에 발을 들여 놓기가 끔찍한 적은 없었다. 환곡 수납을 짜내려고 죄인을 심문했을 때 얼마나 유쾌했던가를 떠올리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그가 그리던 세상은 지옥으로 가버렸다. 칠흑 같은 밤보다 그의 마음이 더 어두웠다.

 포졸은 물론 옥사장(獄舍長)까지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심복을 배치해 잡인은 얼씬도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두었다. 어쨌거나 현령의 행각은 누구의 귀에 들어가서도 안 되었다.

 차덕구는 포승줄에 묶인 채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옷차림은 남루했고, 상투는 풀려 어깨 위로 헝클어져 있었다. 어깨가 초라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옹집이 들어와 인기척을 내도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잘못한 게 없으니 오해가 풀리면 바로 석방될 거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육모방망이로 옥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차덕구가 뒤돌아보았다.

 조옹집을 보더니 차덕구가 미소를 지었다.

 "포교 나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근심기라고도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차덕구가 차라리 부러웠다. 그가 이제부터 당할 고통이 머리를 옥죄자 동정보다 분노가 앞섰다.

 심문이 있기 전 현령은 조옹집에게 차덕구의 혐의를 분명하게 못 박았다.

 "그 놈이 관아의 재물에 손을 댄 데는 분명 까닭이 있을 게야. 사라진 돈이 적지 않더군. 죄인인 놈이 금방 의심 받을 돈을 왜 훔쳤겠는가? 쌀 한 줌만도 못한 값어치인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박태수가 원금에 웃돈까지 얹어주면서 차상두가 섬을 빠져나갈 배를 구할 욕심으로 돈을 훔쳤다고 귀띔했다. 장차 손위처남이 될 사람의 허물이니 덮어두라는 암시였다. 당장 끌고 와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돈도 날아가고 홍이도 날아갈 테니 참았었다.

 그 진실을 현령에게 실토할 수는 없었다. 현령의 비위나 맞춰주는 가락을 들려줘야 했다.

 "미욱한 놈이 경우를 알고 한 짓이겠습니까. 견물생심에 앞뒤 가리지 않고 손에 움켜쥔 것이겠죠."

 대답이 성에 차지 않는지 현령이 손가락을 세워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야. 이놈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듯해. 자네도 요즘 세상을 떠도는 흉측한 참요는 들어 알고 있겠지?"

 난데없는 반격이었다. 그도 물론 세간에 돌아다니는 시 나부랭이는 본 적이 있었다. 글 깨나 읽었다는 위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 뜻을 풀어낸 사람은 없었다.

 조옹집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고개만 끄덕였다.

 "나도 입수해 읽었는데, 도무지 요령부득이더군. 해서 문탁이에게 보여줬네. 그랬더니 임신기병(壬申起兵), 임신년에 병란이 일어난다는 뜻이라 풀어내대. 그 놈 참 기특해. 내후년 식년시 장원급제는 따 놓은 당상이라니깐. 허허허!"

 그 말에 조옹집의 귀도 환하게 뚫렸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잠시 껄껄 웃던 현령이 표정을 거두며 말을 이어갔다.

 "차덕구 그놈이 남해에서 벌일 거사 자금을 비밀리에 모으고 다녔을 게 분명해. 죄를 져 섬에 처박힌 놈이니 흉모(凶謀)에 가담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지. 그렇지 않겠나?"

 다짐하듯 현령이 물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시골서 땅이나 파먹던 농투성이가 나라를 뒤집을 역모의 주동자라니. 옆집 개가 웃을 헛소리였다. 그러나 현령의 진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고로 역모란 죽이 맞아 함께 움직이는 떨거지가 있기 마련.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이놈이 저 혼자 몸이 달아 이런 일을 꾸몄을 리는 없어. 분명 사주했거나 부화뇌동한 패거리가 있을 걸세. 이제부터 자네는 차덕구의 입에서 흉모에 가담한 역적들의 이름을 긁어내야 하네. 놈들을 일망타진한다면 금상 전하께옵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조정의 포상은 덤으로 따라올 테고."

 이러니 차덕구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차덕구만일까? 그 일가는 말할 것도 없고, 엮기에 따라서 수십 명이 목을 떨어질 판이었다. 그 피비린내 나는 바람을 조옹집이 일으켜야 했고, 차덕구는 그 불길의 첫 심지였다.

 차덕구의 입에서 누군가 그럴듯한 역적의 이름을 끄집어내기는 애시당초 그른 일이었다. 제 이름자도 못 쓸 놈이 이 고을에서 행세깨나 할 사람의 신상을 알 턱이 없었다. 그걸 버젓이 알 현령이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은 미리 날조한 자백서에 날인만 받고 입막음을 하라는 소리였다. `물고`는 그런 뜻이었다.

 옥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금이 저릴 만큼 한기가 돌았다.

 "어떠신가? 불편할 텐데?"

 "곧 나갈 텐데요. 나리께서 잘 말씀해 주세요. 이거 원……"

 차덕구가 버덩거리며 등 뒤로 묶인 손을 움직였다. 움직일수록 더욱 파고드는 게 오랏줄의 속성이었다.

 조옹집이 몸을 낮추고 달래듯 말했다.

 "이보게, 덕구. 자넨 지금 개미지옥에 빠진 거야. 여기서 살아나가긴 틀렸다구. 허나, 한 가지 다짐만 해주면 내가 어떻게든 힘을 좀 써보지."
 차덕구의 얼굴이 차갑게 상기되었다. 자신이 무슨 죽을죄를 졌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소인은 귀양 와 제 일 한 것밖에 없는데, 무슨 소립니까? 죽을죄라니요? 영문을 모르겠네요."

 환멸이 밀려왔다.

 "더 따질 것 없어. 한 가지만 약조하라니깐."

 "약조라시면……?"

 제 입으로 그 약조를 뇌까리려니까 목덜미로 으스스한 감질(疳疾)이 타고 흘렀다. 그러나 대신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홍이, 자네 딸을 내게 주게."

 잠시 차덕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망울만 굴렸다.

 "달라니요? 그러니까……"

 "내게 시집을 보내란 말이지. 그렇기만 하면 어떻게 하든 자네 목숨만은 건져 주겠네. 잘 생각해봐."

 조옹집이 일생 처음으로 간절하게 말했다. 그제야 차덕구는 조옹집의 의사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었다.

 "그, 그, 그러니까 내 자식을, 홍이를 네, 네, 네 놈 마누라로 달라는 소리냐?"

 차덕구의 눈은 분노와 증오, 멸시, 역겨움으로 가득 찼다.

 "왜, 싫은가?"

 차덕구가 온몸을 벌떡 일으켰다. 놀라운 괴력이었다.

 "이 개놈의 망나니 새끼! 이 자리에서 날 당장 죽여라. 당장 죽여! 어떻게 키운 딸인데, 네 놈에게 주어 똥물을 뒤집어쓰게 하느니 그년의 목을 졸라 죽이련다. 이 미친 늙은 개새끼야. 니 에미하고도 붙어먹을 호랑말캐 썩을 잡놈아!"

 악다구니를 쓰는 차덕구의 얼굴은 거대한 불덩어리처럼 타올랐다. 증오로 치가 떨렸다. 그 저주의 목소리가 조옹집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이런 쌍놈이, 뭐라 씨부리는 거야!"

 어둠의 장막을 거둘 듯 조옹집이 육모방망이를 휘둘렀다.

 어둠이 걷혔을 때 차덕구는 머리가 깨진 채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차덕구의 시신은 멍석에 말려 일가가 살던 집 마당에 던져졌다. 새벽이 지워질 무렵, 밤새 뒤척이다 먼저 일어난 어머니 윤점이가 시신을 발견했다. 멍석을 들춰본 윤점이는 끔찍한 지아비의 몰골을 보자마자 혼절해 쓰러졌다.

 차상두는 악을 쓰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홍이가 윤점이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피눈물을 토해냈다. 차덕구의 시신은 그대로 마당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관아의 눈이 무서운 동네 사람들도 안타까워 발만 동동 구를 뿐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한 식경 만에 윤점이는 저승 문에 한 쪽 발을 들여놓았다. 온몸을 부들거리다가 결국 삶의 희망을 내려놓았다.

 윤점이가 홍이의 손을 잡더니 한숨보다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저기 고리짝……."

 말이 다 이어지지 않았다.

 "왜, 엄마. 정신 차려. 제발 정신 차려."

 "저기……고리짝 안……."

 홍이가 엉금엉금 방구석 고리짝으로 기어갔다. 고리가 무명 끈으로 묶여 있었다.

 "열어……."

 고리짝 바닥에는 고이 개켜진 비단과 예쁜 꽃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네 시집갈 때 입히고 신키려고……. 이 에미가 없어도 잘 건사했다가 시집갈 때 꼭……."

 윤점이의 손이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평생 흙을 만져 흙처럼 누런 손이 누런 흙바닥과 만났다. 손바닥에는 망령처럼 멍석의 지푸라기 몇 오리가 굴렀다.

 "안돼! 안돼! 엄마, 죽으면 안돼! 엄마 없이 우린 어떻게 살라고! 엄마! 엄마!"

 더 이상 홍이의 외침을 윤점이는 들을 수 없었다. 마당으로 내려간 윤점이의 넋은 강진만 너머 떠오르는 햇살을 받더니 먼저 넋이 된 지아비 차덕구의 손을 잡고 되돌아보며 뒤돌아보며 금산 하늘 위로 스러져갔다.
 윤점이의 시신을 안고 흐느끼는 홍이의 어깨 너머로,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슬프게 노래를 불렀다.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 몇 마름.
 옷장 속 깊이 깊이 모셔두고서
 생각나면 꺼내서 만져만 보고
 펼쳐만 보고 둘러만 보고
 석삼년이 가도록 그러다가
 죽어지면 두고 갈 걸 생각 못하고
 만져보고 펼쳐보고 둘러만 보고.
 
 시집올 때 가져온 꽃신 한 켤레.
 고리짝 깊이 깊이 모셔두고서
 생각나면 꺼내서 만져만 보고
 쳐다만 보고 오오, 닦아도 보고
 석삼년이 가도록 그러다가
 죽어지면 두고 갈 걸 생각 못하고
 만져보고 쳐다보고 닦아만 보고.
 만져보고 펼쳐보고 둘러만 보고.

  <양단 몇 마름>
   (정태춘 작사/작곡, 박은옥 노래)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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