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사람들에게 우리 지역의 최고 강점을 물으면 거의 모두 천혜의 자연환경이라고 대답한다. 이들의 견해가 틀린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찬사는 남해의 큰 도로에서 차창 너머로 바라본 풍경을 그저 막연하게 감상한 것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 지역의 좀 더 깊은 풍경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수려한 자연경관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은 부끄러울 정도이다.
경관학자들은 한 지역의 풍경을 근경(近景), 중경(中景), 그리고 원경(遠景)으로 세분화 하여 조망한다. 이러한 구분에 근거하여 경관을 접근해 보면, 집 앞의 풍경을 근경, 집 앞에서 큰 도로까지의 풍경을 중경, 그리고 큰 도로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원경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접근해 본다면, 원경은 자연적인 경관에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큰 도로를 중심축으로 하여 개발된 인위적인 건설이 더해진 풍경이다. 이와는 달리, 근경과 중경이 발달된 지역의 풍경은 지역의 삶과 정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람의 역사가 곳곳에 묻어 있다.
근경과 중경이 아름다운 지역은 조상 대대로 이어진 그 지역의 고유한 가치가 살아 있는 곳이 많다. 이런 지역에는 자연 그대로의 옛 모습이 잘 간직되어 있어 고풍스럽고 정겹고 소담스러운 곳이 많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빠른 속도감에 거부감을 느끼고 되도록이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상호간에 함께 하는 공유와 공감을 중시한다.
그러나, 원경만 발달하고 근경과 중경이 보존되지 못한 지역은 일직선 도로가 뚫려 있어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효율성이 최우선시 된다. 그 만큼 이런 지역 사람들은 빠른 속도감에 빠져 여유로움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이런 지역은 인심이 각박하기 마련이다. 이런 곳에는 소규모 공동체의 활성화는 찾아 볼 수 없고 파편화 현상까지 노출한다.
관광주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관광객들은 처음에는 원경에 잠시 눈길을 돌리다가 결국은 중경과 근경에 관심이 쏠리는 경우가 많다. 원경만 발달되고 근경과 중경이 보존되지 못한 지역의 관광객들은 자동차에서 내려 좁은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그 지역의 아름다운 전경에 대해 정감 있는 느낌을 갖지 못하므로 잠시 눈으로 구경하고 다음 관광장소로 급히 달려간다. 그런데, 중경과 근경이 잘 보존되어 있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런 지역의 관광객들은 자동차에서 내리고 싶은 충동과 그 지역에서 식사를 해결할 마음이 생겨난다. 어떤 관광객들은 열흘이든 한 달이든 그곳에 더 머물고 싶어 하면서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관광을 한다.
우리 지역은 어떤 풍경의 지역일까? 안타깝게도 우리지역에는 원경이 잘 개발되어 있으나 중경과 근경에 대한 지속 가능한 발전 정책 없이 마구잡이로 개발되는 현실이 수세월 동안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우리지역 동네의 개발도 고유한 가치나 특색 없이 획일화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남해의 중경과 근경이 소리 없이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남해의 중경과 근경이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남해 지역발전의 역사를 보면 중장기 지역발전의 세밀한 청사진 없이 언제나 큰 길을 뚫고 새로 도로를 건설하는 데만 온통 관심이 집중되고 지역의 고유한 자연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개발하기 위한 발전계획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 발전계획이 하드웨어의 개발에만 쏠려 있고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관리가 관심 밖이다 보니 우리네 지역의 중견과 근경이 이런 상태로 변해 가고 있다.
지금 우리 지역 동네 곳곳의 모습을 둘러보면 여기나 저기나 거의 모두 판박이처럼 똑같다. 이런 획일화된 풍경을 보고 어떤 관광객이 차에서 내려 머물고 싶겠는가? 남해가 발전하려면 죽어가고 있는 중경과 근경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을 한번쯤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의 고향, 나의 삶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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